/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회 연설이 뉴욕 증시를 한껏 밀어올렸다. 간밤 다우존스 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21,000선을 뛰어넘었고 S&P500 지수와 나스닥도 역대 최고치를 새로 썼다.

'트럼프의 연설'은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구체적이지 못하고 밋밋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주식시장은 왜 그의 연설에 반색했을까. 연설에 숨은 뜻이 명확했고, 앞으로 나올 구체적인 정책에 거는 기대감이 더 커졌다는 설명이다.

◆ 다우지수 21,100 웃돌아…20,000선 돌파 24일 만

'트럼프 연설'에 장초반부터 급등하며 화색한 미국 증시는 금융업종을 중심으로 장중 내내 강세를 유지했다.

1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303.31포인트(1.46%) 오른 21,115.55에 장을 마쳤고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지수도 32.32포인트(1.37%) 상승한 2395.96을 기록했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지수는 78.59포인트(1.35%) 뛰어올라 5904.03에 거래를 마감했다. S&P500 지수와 나스닥 모두 역대 최고치다.

다우존스 지수는 지난 1월25일 120년 만에 20,000선을 돌파한데 이어 불과 24거래일 만에 21,000선을 뚫었다. 전문가들은 "인프라 투자와 세제개혁 등을 다시 확인시켜 준 트럼프의 의회 연설이 투자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라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연설을 통해 향후 10년간 인프라 투자에 1조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기존 공약을 강조하는 동시에 중산층과 기업을 위한 감세 방침 역시 재차 강조했다. 아울러 금융 규제를 없애고 기업활동을 자극할 수 있도록 대대적으로 규제 허들을 낮추겠다고 했다.

◆ "할리데이비슨이 다른 국가에서 100%에 달하는 세금을 물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이 다른 국가에서 최대 100%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받고 있는데 공정한 무역을 위해 이를 해소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도중에 이렇게 할리데이비슨 임직원과 나눈 일화를 소개했다. 그가 기존에 주장하던 국경세 부과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관세불평등을 반드시 해소하겠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한대훈 SK증권 마켓 애널리스트는 "알맹이가 없었던 이번 연설에서 그래도 주목할 점은 트럼프가 관세에 대한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는 점"이라며 "트럼프는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기업이 미국으로 제품을 수출할 때 35%의 관세 부과를 주장하고 있지만 공화당은 수출품 세감면과 함께 수입품에 20%의 관세 부과를 주장하고 있는데 의견 조율을 통해 관세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판단했다.

트럼프는 실제로 이번 연설에서 "자유무역을 강력히 지지하지만, 공정무역이어야 한다"고 선을 그은 뒤 "미국의 수출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높은 관세와 세금을 부과하지만, 미국으로 들여오는 외국 제품의 경우 거의 아무것도 부과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권아민 동부증권 경제담당 연구원은 이에 대해 "관세를 염두에 둔 특정 국가 및 품목도 아닌 수출과 수입을 구분하는 맥락으로 발언을 이어갔다"며 "이는 환율조작국, 징벌적 관세가 아닌 국경조정세의 취지로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 "미국은 중동에 6조 달러나 쓰는데 움푹 파인 미국 도로에는 신경을 안쓴다"

인프라 투자에 대한 트럼프의 강한 의지도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트럼프는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6조 달러를 지출하는 동안 자국 내 인프라가 붕괴됐다"면서 "해당 금액으로 미국을 두 번이나 재건할 수 있었다"고 말해 오바마 전 정권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신한금융투자는 "트럼프가 국회 연설에서 노후 인프라에 1조 달러를 투자하는 법안 승인을 요청할 것이라고 한 데 이어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 프로그램인 '주간 고속도로시스템'을 언급했다"며 "이는 국가 재건축 프로그램 실시를 주창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대훈 연구원은 다만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방안 등 트럼프 재정정책의 골격은 유지했지만 실현가능성과 재원조달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은 당분간 '기대반 우려반'으로 지켜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지만 기존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강도가 낮아졌다는 것. 그는 "그 동안 교역상대국(중국, 일본, 독일 등)에 대한 맹비난이 이번 연설에는 없었다는 점에서 시장이 안심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 "사소한 싸움들을 뒤로 할 시간이다"

트럼프는 국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미국 정신의 회복'이란 제목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미국 우선주의만 강조해온 과거 연설과 달리 국민 화합을 강조, 연설 내내 온건한 모습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CNN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중 78%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은택 SK증권 투자전략팀 연구원은 "트럼프의 연설에 구체적인 재정 계획이나 새로운 정책이 없었다는 현지 언론의 논평에도 불구하고 뉴욕 증시는 랠리를 펼쳤다"며 "전문가들과 미국 국민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고급 기술 인력 위주로 합법 체류 신분을 부여하는 이민 정책을 지지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강력히 지지한다"라고도 잇따라 발언, 기존 강경했던 이민 정책에서 다소 완화된 자세를 취했다.

한대훈 연구원은 "NATO 회원국 모두가 공정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NATO 체제를 인정한 것"이라며 "지난 대선 기간과 취임 초에 NATO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것을 비교해 보면 그의 누그러진 어조가 유럽 금융시장에 불확실성 요인 하나를 제거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나중혁 KB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연설이 주가에 '단기적인 영향'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나 이코노미스트는 "'타협적인 태도'가 시장의 낙관적인 평가를 이끌어낸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연설 이후 급진적인 재정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3월 통화정책회의(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지난 1월 의사록 공개(2월22일) 당시 32%에서 80%까지 급등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 참여자들의 호평과 달리 시장 일각에서 기대한 구체적인 실현방안에 대한 제시가 없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영향을 예단하기 어렵다"며 "금융시장의 호의적인 반응 역시 단기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