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따라 오르내리는 계단식 외국인 순매도
원·달러 환율의 심리적 저지선이라는 달러당 1180원 선이 뚫리자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의 본격 이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외국인은 원화값이 떨어질 때마다 커지는 환차손 부담 때문에 환율 구간별로 ‘계단식 매도’를 해왔다. 하지만 원화 약세가 한국 주식 보유의 ‘임계점’에 근접하면서 환율 부담을 견디기 힘들어진 외국인들이 이전보다 훨씬 큰 규모로 순매도에 나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환율 구간별로 대응

코스피지수는 24일 전날보다 16.69포인트(0.84%) 떨어진 1971.26에 마감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1412억원어치를 순매도한 영향이 컸다. 외국인이 7거래일 만에 순매도로 돌아서면서 트럼프 당선 이후 ‘눈치보기’를 이어가던 외국인이 ‘이탈’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때마침 외국인 자금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원·달러 환율이 1180원10전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달러화 기반으로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외국인은 원·달러 환율 변동에 따라 보유자산 가치가 출렁인다. 환율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 트럼프 당선 이후 2주 동안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140원대에서 1180원대로 급등하면서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움직임도 환율 움직임을 철저히 뒤쫓았다.

미국 대선 전 달러당 1140원대에서 안정적 흐름을 보이던 원화값은 트럼프 당선 이후 가파른 달러화 강세의 직격탄을 맞고 고꾸라졌다. 10일 달러당 1150원대, 11일 1160원대에 진입했고 14일엔 1170원대를 기록했다.

3거래일 연속으로 환율 구간대가 달라지자 외국인은 ‘계단식’으로 단계적 매도 전략을 구사했다. 원·달러 환율 1160원대 구간에서 4495억원어치 한국 주식을 순매도한 외국인은 1170원대 구간에서 다시 4867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새로운 환율 구간에 진입한 첫날 매도 강도가 셌다. 김형래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환율이 1180원을 넘어섰을 때 외국인 매도세가 더욱 뚜렷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이 빚어진 것은 2013년 이후 인덱스펀드 등 패시브 자금이 외국인 자금의 주를 이루면서 환율 민감도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달러당 1200원도 가시권

외국인은 원·달러 환율이 1180원대에 진입한 지난 18일 이후로는 4거래일간 6393억원어치를 순매수하는 예상 밖 행보를 보였다. 증권가에선 달러당 1180원대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으로 외국인이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22~23일 1170원대로 환율이 다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 점도 한몫했다.

하지만 24일 환율이 1180원대에 재진입하면서 1180원대 ‘고환율’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됐고 외국인 행보도 대량 순매도로 다시 돌아서는 모습이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센터장은 “트럼프 당선 이후 조성된 달러화 강세 구조가 바뀌긴 어려워 보인다”며 “심리적 저지선이라는 달러당 1180원 선이 뚫린 만큼 내년 1분기 1200원 선까지 환율이 급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조만간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며 외국인 자금 이탈이 진정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박성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1200원에 근접하면 조만간 환율이 다시 떨어질 것을 예상해 외국인 매수세가 몰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

김동욱/고은이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