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해외 주식형 펀드의 자금몰이를 주도했던 유럽펀드가 1년 만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에 이어 도이치뱅크 사태 등으로 유럽 증시가 휘청거리면서 유럽펀드도 연초 기대와 달리 성과 부진에 빠졌기 때문이다. 유럽 대형은행의 부실 우려와 유럽중앙은행(ECB)의 테이퍼링(채권매입 중단) 등에 대한 경계감에 유럽펀드에서 등을 돌리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호재는 어디에…" 애물단지 유럽펀드
◆올 들어 5000억원 이탈

17일 펀드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7개 유럽펀드에서 올 들어(14일 기준) 4995억원이 빠져나갔다. 유럽펀드 전체 설정액(1조7236억원)의 30%에 달하는 규모다. 해외 주식형 펀드 중 자금 이탈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ECB의 양적완화 정책 기대감에 1조4755억원을 끌어모으며 몸집(설정액)을 세 배 가까이 불린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 브렉시트 결정 등 각종 악재가 잇따르면서 유럽펀드에 대한 투자자 태도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2개국 유럽 증시의 우량주 50개로 구성된 유로스톡스50지수는 올 들어 지난 13일까지 8.93% 하락했다. 이를 고려하면 유럽펀드의 연초 이후 평균수익률(-4.53%)은 선방한 수준. 하지만 지난해 투자자가 몰렸던 주요 펀드들은 대부분 마이너스 수익률로 돌아섰다. 지난해 1조원 가까운 자금을 끌어모은 ‘슈로더유로’는 연초 이후 -4.51%의 수익률을 내며 2887억원이 빠져나갔다. ‘KB스타유로인덱스’(-6.65%) ‘하나UBS유럽포커스’(-9.43%) 등 대부분 펀드에서도 500억원 안팎의 자금이 유출됐다.

◆“내년 초까지 상승 동력 안 보여”

안갯속 유럽증시를 쳐다보느니 미국이나 신흥국 증시로 눈을 돌리는 게 낫다는 시각도 유럽펀드의 자금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인터넷 소프트웨어 등 성장주들이 주도하는 미국과 달리 유럽증시는 은행주 비중이 높은 데다 내년 초까지 예정된 정치 이벤트들로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어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는 진단이다. 김지은 삼성증권 연구원은 “브렉시트 협상과 오는 12월 이탈리아 헌법개정안의 국민투표 결과 등에 따라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아 KB자산운용 해외인덱스운용팀장은 “저금리 국면에서 하방경직성은 있겠지만 주가 상승을 이끌기에는 경기 개선세가 미미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당분간 유럽펀드 중에서도 유로존보다 영국 비중이 높은 펀드의 성과가 상대적으로 나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영국 비중이 높고, 은행주 비중이 낮은 ‘피델리티유럽’(2.57%)과 ‘알리안츠유럽배당’(-1.67%) 등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유럽펀드 가운데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