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조원에 이르는 퇴직연금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디폴트 옵션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디폴트 옵션이란 퇴직연금의 가입, 운용, 수령 단계에서 투자자의 특별한 의사 표시가 없으면 사전에 정해진 방식과 상품 등에 자동 가입해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다.

금융감독원은 1일 증권 은행 보험 등 45개사와 자본시장연구원 등 관계자를 초청해 ‘퇴직연금사업자 간담회’를 열었다. 퇴직연금제도 운용 전반에 대한 업계의 건의를 듣고 퇴직연금 역할 제고 방안을 논의했다.

서태종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간담회에서 “국내 퇴직연금 가입률은 50%대(52.4%)에 머물러 있고 대부분 연금 형태가 아니라 일시금으로 받고 있다”며 “적립금의 90.5%를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해 수익률도 낮다 보니 ‘노후 안전판’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연금수급 요건(55세 이상)을 충족하는 퇴직연금계약 중 연금수령 비율은 계좌 기준으로 1.7%, 금액 기준으로 13.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에서 퇴직금을 일시금이 아니라 연금으로 받도록 유도하려면 ‘디폴트 옵션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자본시장연구원은 설명했다. 미국은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에 가입되고, 구체적 운용 지시가 없으면 정부가 지정한 적격 투자상품으로 운용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미국, 스웨덴 등에서는 디폴트 상품이 전문가가 잘 설계한 대표 상품이란 인식이 있어 투자자 신뢰가 높다”며 “수령 단계에 디폴트 옵션이 도입되면 연금 수령 비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현행 30%인 퇴직연금 적립금의 소득세 감면 폭을 늘리고, 적립금 일부를 자유롭게 인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신 나머지 적립금은 연금 수령하도록 의무화하는 중도인출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서 수석부원장은 퇴직연금 사업자들에게 “가입자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운용 상품을 제시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고객별로 다양한 상품을 제시해야 한다”며 “불공정한 영업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 통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