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계열 증권사들은 국내 증권업계의 판도 변화에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업계가 대기업계열 증권사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옛 현대그룹은 1977년 국일증권을 인수하고 회사 이름을 현대증권으로 바꿨다. 건설 자동차 해운 등 그룹 주력사 그림자에 가린 현대증권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자금난에 처한 그룹을 구하는 데 크게 기여하자, 회사 안팎의 시선이 달라졌다. 현대증권에서 출시한 ‘바이코리아 펀드’가 주식을 매입해주는 방식으로 계열사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오름세를 보이는 주가를 바탕으로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 현대그룹 계열사들은 간신히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현대증권의 성공사례를 따라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LS 두산 유진기업 등이 줄줄이 증권사 인수에 나섰다. 내부현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그룹 내 투자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통로로 활용하려는 포석이 강했다. 계열사 곳간을 관리하는 ‘집사’ 역할을 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침체 때마다 대기업계열 증권사는 가장 먼저 매물로 등장했다. 2004년 카드 사태로 위기를 맞은 LG그룹이 LG투자증권을 매각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조선업황 악화에 시달리는 현대중공업은 하이투자증권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대기업계열 증권사도 매각설 때문에 좌불안석인 곳이 2~3곳 있다.

증권업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이 기회에 증권사를 처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한 증권사 사장은 “리스크가 많은 증권사를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증권사 관리 부담을 덜어내고 본업에 집중하려는 그룹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