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전성시대] 박스권 증시 승자는 ETF…주식형펀드 80% 무릎 꿇어
투자자들이 일반 펀드에서 이탈해 상장지수펀드(ETF)나 상장지수증권(ETN)으로 옮겨가는 이유는 게임의 규칙이 단순해서다. 지수의 상승폭과 하락폭을 보면 수익률이 얼마인지를 알 수 있다. 개별 종목보다 지수가 방향성을 가늠하기 쉽다는 점도 ETN과 ETF로 투자자가 몰리는 이유로 꼽힌다. 기존 주식형펀드에 대한 실망감도 지수 투자가 인기를 끄는 배경 중 하나다. 시중에 나와 있는 펀드 중 80% 이상이 ETF(코스피 200지수 연계형)의 성과를 밑돌고 있다.

◆박스권 증시의 ‘요술방망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 결과가 알려지면서 코스피지수가 3%가량 급락한 지난달 24일. 이날 하루 동안 2조9345억원어치의 ETF가 거래됐다.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찾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하루 기준 거래 대금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자산운용사의 지수추종형 상품인 ETF와 증권사의 유사 상품인 ETN을 활용해 ‘패시브 투자’에 나서는 투자자가 늘어난 배경은 5년째 이어진 박스권 증시다. 코스피지수가 1900~2000선 사이를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면서 지수 변동을 통해 수익을 얻으려는 투자자가 늘어났고 이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ETF가 급부상했다는 설명이다. 브렉시트와 같은 외부 악재가 터져 지수가 일시적으로 폭락했을 때가 지수 추종형 ETF를 사들일 적기다. 지수 1900선에서 사서 2000에 판다고 가정하면 5%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지수 변동폭의 두 배를 투자하는 상품에 투자했다면 수익률은 10%까지 올라간다.

대부분의 펀드는 지수 하락기에 손실을 낸다. 하지만 ETF 세계에선 돈을 벌 기회일 수 있다. 이런 시기엔 지수와 거꾸로 움직이는 인버스 ETF를 사들이면 된다. 이르면 8월부터 하락폭의 두 배만큼 지수가 오르는 인버스 레버리지 ETF가 가세하는 만큼 ‘거꾸로 투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아직까지 국내 ETF 시장에선 단순 지수 추종형 상품이 대세다. 국내 ETF 시장 거래대금 중 54%가 코스피지수 연계 상품에 집중돼 있다. 이경민 미래에셋대우 프라이빗뱅킹(PB)클래스 갤러리아 상무는 “박스권 증시에선 주식이나 펀드를 사서 오래 보유하는 것만으론 수익을 낼 수 없다”며 “코스피지수가 장기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ETF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값싼 수수료에 세제 혜택도

최근엔 ETF를 해외 자산배분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2013년만 해도 해외 지수 연계 ETF의 순자산은 5328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말 1조6127억원으로 덩치가 세 배 이상 커졌다. 일반 펀드보다 수수료가 저렴하고 실시간으로 매매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펀드 매니저가 따로 있는 해외 펀드들은 매년 맡긴 돈의 2% 안팎을 수수료로 떼지만 해외 주식 연계 ETF 수수료는 0.5~0.7% 수준에 불과하다.

올 2월 금융당국이 해외주식투자전용펀드를 허용하면서 적립식으로 해외 ETF를 사들이고 있는 투자자도 급증했다. 이 계좌를 통하면 수익의 15.4%를 세금으로 물지 않아도 된다. 해외주식투자전용펀드에 담을 수 있는 상품은 15종에 달한다.

최근 운용사가 내놓고 있는 신상품들은 대부분 해외 지수 연계 상품이다.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데다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상품을 만들기도 용이하다는 설명이다. 하반기에는 삼성운용의 MSCI 월드 ETF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 신흥국 지수에 연동하는 ETF가 새로 선보인다. 유럽 대표 기업 50곳의 주가를 지수화한 유로스톡스50지수를 역방향으로 추종하는 ETF도 준비돼 있다. 안방에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세계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개인이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 패시브(passive)투자

코스피200 등 주요 지수의 등락에 따라 기계적으로 지수 편입 종목을 매매하는 투자 방식. 상장지수펀드(ETF), 인덱스펀드 등이 대표적인 상품이다.

■ 상장지수펀드

ETF·exchange traded funds. 특정 시장 지수와 연동돼 수익률이 결정되는 펀드. 한국거래소에 상장돼 개별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다.

안상미/송형석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