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M&A 방치…외국계·회계법인서 주도권 찾아와야"
"국내 증권사들이 인수합병(M&A) 업무를 너무 방치하고 있다. M&A 업무를 할 줄 모르는 증권사는 사실상 (증권사) 자격이 없다. (외국계와 대형 회계법인에 빼앗긴) 시장 주도권을 찾아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증권사에 이례적으로 쓴소리를 던졌다. 미국에서 증권사가 M&A 시장을 주도하는 것과 달리 국내 증권사들은 이 시장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황 회장은 12일 서울 금투협 인근 한 식당에서 간담회를 갖고 "지난해와 올해 국내에서 발생한 47건의 M&A 중 국내 증권사가 주관한 건 3건에 불과하다"며 "증권사가 M&A 업무를 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M&A 시장은 모건스탠리·씨티뱅크·크레디트스위스 등 외국계 증권사 및 은행과 삼일·안진 등 대형 회계법인이 쥐락펴락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M&A 시장은 2012년부터 급성장해 지난해 11월 금액 기준 76조8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주로 대기업 사업·지배구조 재편을 위한 대형 M&A 등 국내 기업 간 M&A가 시장을 견인했다.

M&A 시장이 급성장한 것과 달리 증권사 수익 구조에서 관련 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증권사 수익에서 M&A 주선과 자문이 차지한 비중은 각각 7.9%, 0.4%에 불과해 위탁매매(56.7%) 와 비교하면 턱없이 작았다. 2004년(6.7%, 0.1%)과 비교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권사들은 지난 10년 사이 전문성과 평판에 의존한 사업 영역에서 수익을 높이지 못했다"며 "차별화한 역량을 필요로 하는 인수 주선과 M&A 자문에서 수익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 회장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 대형 상장 기업의 M&A는 증권사가 주도하는 게 맞다"며 "시장 주도권을 찾아오기 위해 증권사 자체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증권사 차원의 노력과 함께 제도적으로도 증권사가 M&A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경우 M&A를 위한 마지막 단계가 증권(주식) 매매인만큼 이 업무를 증권 매매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증권 매매업 등록을 해야만 M&A 업무를 할 수 있다.

황 회장은 "우리나라는 M&A 업무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어 개인이나 부티끄도 할 수 있다"며 "앞으로 M&A 업무를 하려면 증권업 등록을 반드시 하도록 건의할까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증권사가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회계법인 등이) 잘하고 있는 일에 재를 뿌리는 것이 될 수 있어 차마 강력하게 건의하지 못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금투협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증권사가 M&A 업무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보와 네트워크의 부족 때문"이라며 "이 업무로 증권사가 수익을 내려면 최소 5년 이상 시간이 필요하지만, 증권사 사장 임기는 이보다 짧아 꾸준히 투자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황 회장은 이날 또 "증권사의 법인(기업) 지급결제 업무 허용에 대해서도 보다 강력하게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법인 지급결제를 허용하면 증권사가 기업들과 쌓을 수 있는 관계가 훨씬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법인 지급결제는 급여 이체와 대금 결제 등을 포함한 업무다. 현행 자본시장법엔 증권사도 법인 지급결제 업무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금융결제원 내부 규정에서 이 범위를 개인으로 제한했다.

예컨대 A 기업이 협력업체에게 대금을 지급할 때 은행이나 저축은행 계좌를 통해서는 할 수 있지만, 증권사에서는 불가능하다.

황 회장은 "증권사들은 지급결제 업무를 위해 2009년 금융결제원에 특별참가금(3375억원)까지 납부했다"며 "이 문제가 은행과 증권사 간 다툼으로 가는건 원치 않지만, 고객 편의를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민경 한경닷컴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