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채 피하고 사모채·CP 발행으로 선회

해운·건설 등 경기민감 업종에 속한 일부 기업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금조달 창구로 공모 회사채(공모채)보다 사모 회사채(사모채)나 기업어음(CP) 발행에 더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공모채보다는 일반적으로 금리가 높은 사모채나 만기가 짧아 조달 안정성이 떨어지는 CP는 발행자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불리한 자금융통 수단으로 볼 수 있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해운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1월 이후 7년여 만에 1년 만기 CP 22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이 회사는 하반기에는 1천500억원어치 사모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CP는 향후 필요한 자금을 미리 마련하는 차원이고 사모채 발행은 차환 목적"이라고 말했다.

SK해운이 공모채가 아닌 사모채 시장을 택한 것은 해운업황 악화로 수요예측에서 기관투자자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모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 나섰다가 미매각 물량이 생기면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아예 그럴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사모채 시장을 택했다는 얘기다.

이런 배경에서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국고채 금리 영향으로 A급 회사채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지만 건설사들도 공모 시장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건설업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A-등급에 해당하는 SK건설은 올 2월부터 이달까지 1천100원어치의 CP를 발행했다.

2013년 4월 이후 3년 만의 CP시장 복귀다.

CP는 기업이 상거래와 관계없이 단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인 융통어음이다.

A등급인 GS건설은 지난달 12일 2천500억원어치의 사모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투자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3년 후부터 조기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을 부여했다.

같은 등급인 롯데건설도 최근 사모채 200억원어치를 내놓았다.

롯데건설과 GS건설은 대기업 계열이지만 채권시장에서 동일 등급의 기업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

롯데건설의 3년물 금리는 연 4.5% , GS건설 금리는 연 3.1% 수준이다.

이는 A급에 대해 민간 채권평가사가 제시한 평균금리(2.7%)보다 높은 것으로, 시장에선 두 회사의 신용위험도가 다른 동일 등급 기업에 비해 높다고 보고 있다는 의미다.

한편 중견해운사인 폴라리스쉬핑은 사모채가 아닌 공모채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미매각되는 낭패를 봤다.

BBB+등급인 폴라리스쉬핑은 지난 3일 300억원 모집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100억원어치 미매각이 발생했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사모채나 1년 미만짜리 CP는 까다로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은 있을 수 있지만 사모채의 경우 발행금리가 공모채보다 높아 이자비용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정 기자 khj9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