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 "스튜어드십 코드 졸속 도입하면 연금사회주의만 기승"
금융당국이 올 하반기 도입을 추진 중인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지침’ 스튜어드십 코드에 기업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기업 가치를 끌어올린다’는 지침의 효과가 제도를 먼저 도입한 해외 각국에서도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제도를 도입하면 기업에 외부 간섭 및 개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민연금 등의 의결권 확대에 따른 ‘연금 사회주의’ 불안이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의견수렴도 없이…

2일 한국경제신문이 자산운용사와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 40곳을 대상으로 벌인 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의사’에 관한 질문에 ‘자발적으로 가입하겠다’고 응답한 곳은 전체의 15%에 불과했다. 두 배가 넘는 35%의 기관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의 요청이 있으면 가입하겠다’고 응답했다.

반면 ‘당국이 요청했는데도 가입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이 40%로 ‘아니다’(22.5%)는 응답의 두 배 수준이었다.

기업들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관투자가가 자유롭게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연성규범’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강제력이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는데도 제도 도입을 앞두고 이해관계자인 기업은 물론 직접적 가입대상인 연기금 자산운용업계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는 지난해 초 코드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지만 기업과 국민연금 등 연기금은 참여시키지 않았다. 그나마 업계에서 삼성자산운용과 외국계 운용사 한 곳이 참여한 정도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코드 초안을 발표한 이후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겠다고 (금융위에서) 공언했지만 아직까지 금융위와 의견을 나눴다는 기업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앞서 제도를 도입한 영국과 일본은 1년 이상의 공개토론을 거치고 각 업계에서 제시한 의견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기관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도 기업들의 우려다. 기관투자가와 기업 간 대화 활성화도 물리적으로 한계가 많다.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대상 회사와 협의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모든 보유주식 회사와 협의는 불가능하고 일부 주요 회사와 협의하게 될 것 같다’는 응답이 72.5%로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전체 기관의 25%는 ‘주주총회가 3월에 몰려 있어 물리적으로 대화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또 다른 우려는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영향력 확대다. 자본시장 거래비중이 큰 국민연금이 코드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면 기업 경영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증가한다는 게 기업들의 주장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규모는 94조원으로 국내 시가총액의 7% 안팎 수준이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기업 분석능력이 부족한 운용사들이 국민연금의 행사 방향을 따라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의결권 자문사들의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잘못된 자문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국내 최대 의결권 자문업체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조차 직원이 수십명에 불과한 데다 한국거래소가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도 2013년 KB금융지주 임원이 제공한 부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의결권 행사를 자문해줘 문제가 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잘못된 자문으로 투자자 및 회사가 손해를 입지 않도록 예방하고, 사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안도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정/임도원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