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금융회사의 ‘주가연계증권(ELS)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한 투자자 소송에서 상반된 두 개의 판결을 한꺼번에 내놨다. 지난달 KDB대우증권 사건에서는 투자자 편을, 지난 10일 BNP파리바은행 사건에서는 금융사 편을 든 데 이어 이번에는 사건마다 각각 다른 한쪽의 손을 들어줬다. 한 달여 사이에 판결이 잇따라 엇갈리면서 증권업계와 투자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대법원, 또 엇갈린 'ELS 손해배상' 판결
◆엇갈린 금융사 간 희비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김모씨 등 투자자 26명이 각각 “804만~2억6827만원을 배상하라”며 도이치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24일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김씨 등은 2007년 8월 한국투자증권과 도이치은행이 발행한 ELS에 투자했다. 이후 2009년 8월 만기평가일 장 마감 직전 단일매매시간대에 기초자산인 KB금융지주 주가가 기준가격 밑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원금의 74.9%만 돌려받았다.

투자자들은 도이치은행이 장 마감 직전에 KB금융지주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도한 탓에 주가가 떨어졌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도이치은행이 장 마감 직전에 예상체결가가 기준가를 근소하게 넘어서는 시점마다 반복적으로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며 만기 상환을 피하기 위한 시세조종으로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이날 삼성새마을금고가 BNP파리바은행을 상대로 낸 1억여원 규모 상환금 소송에서는 원고 패소를 확정했다. 삼성새마을금고는 2009년 10월 ELS 만기평가일 장 마감 직전에 BNP파리바은행이 기초자산인 신한은행 주식을 대량 매도해 상환을 무산시켰다는 이유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BNP파리바은행이 비록 주가에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매도 주문에 적게 관여하는 등 정당한 헤지(위험회피)거래를 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상반된 판결 아니다”

증권업계에서는 대법원이 판결마다 다른 잣대를 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지난 10일 BNP파리바은행 사건에서는 이 은행이 장 마감 직전 단일매매시간대에서 매도 주문에 관여한 비율(BNP파리바 매도 주문량/총 매도 주문량)이 71%였는데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헤지거래라고 판단했다. 반면 도이치은행은 단일매매시간대에서 매도 주문 관여율이 46%에 불과했는데도 시세조종으로 간주했다. 같은 날 BNP파리바은행 판결에서는 매도 주문 관여율이 10%였다는 점이 시세조종이 아니라는 주요 근거가 됐다.

주문 방식에 대한 판단도 엇갈린다. 대법원은 10일 판결에서는 BNP파리바은행이 장 마감 직전 지정가가 아닌 시장가로 대량 주문을 낸 것에 대해 “시장가 주문은 다른 증권사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 가격 하락을 목적으로 한 주문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도이치은행 사건에서는 시장가 주문이 “(높은 가격의) 지정가 주문이 전량 해소된 다음에 체결되기 때문에 가격 하락 효과가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엇갈린 판결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시세조종을 할 동기가 있었는지와 각각의 주식 매도 형태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 판결”이라고 말했다.

임도원/양병훈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