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수" vs "추가완화 힘들 것"…코스피도 1,970선 보합세

유럽중앙은행(ECB)이 시장 기대치를 크게 뛰어넘는 부양책을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혼재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인하하고 자산매입 규모와 대상을 확대하는 등 광범위한 '바주카포형' 돈풀기 정책이 나왔음에도 추가 완화정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예상으로 시장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나타냈다.

10일(현지시간) 발표된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회의 결과는 규모와 내용 면에서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ECB는 현행 연 0.05%인 기준금리를 0.00%로 낮춰 사상 첫 제로 기준금리를 선언했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예치할 때 적용하는 예금금리는 -0.30%에서 -0.40%로 인하하고, 한계 대출금리도 0.30%에서 0.25%로 낮췄다.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푸는 채권매입 프로그램의 월 매입 한도는 현행 600억 유로에서 800억 유로로 늘렸고, 투자등급의 비(非)금융 회사채도 채권 매입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또 실물경제에 대한 대출을 촉진하기 위해 4년 만기 목표물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을 오는 6월부터 2차로 가동하기로 했다.

ECB의 이번 발표는 정책금리 모두를 내리는 동시에 양적완화 규모를 확대하고 채권 매입 대상도 늘리는 '총동원형'이라는 점에서 시장 전망을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승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번 ECB 정책은 규모와 내용 측면에서 모두 시장 기대치를 압도했다"며 "유례없는 저금리와 유동성 확대, 신용 창출 유도 등 전방위적인 대응으로 향후 정책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소재용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도 이번 정책 내용에 대해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하며 "이번 정책은 역내 금융시장 안정을 넘어 실물 경기 개선을 견인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추가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은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모양새를 나타냈다.

올해 유로존 물가상승률과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가 모두 하향 조정되며 통화정책 무용론이 재부각된 측면도 있다.

최광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ECB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아직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와 물가에 대한 전망치 하향은 분명 좋은 이슈가 아니다"라며 "드라기 총재의 발언도 시장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엇갈린 평가 때문에 시장은 혼조세를 보이고 있다.

전날 유럽 증시는 ECB의 적극적인 완화 정책에 환호하며 초반에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다가 의구심이 확산되면서 하락 마감했다.

완화적인 통화정책은 대체로 통화가치를 떨어뜨리지만, 이번 발표 후에는 유로화 가치도 급반등했다.

이에 따라 국내 증시도 혼조세다.

이날 코스피는 오전 11시16분 현재 전날보다 2.42포인트(0.12%) 오른 1,971.75를 나타내며 보합권 움직임을 이어갔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3월 ECB 추가 완화책의 경제적 영향에 대해서는 반신반의 상태"라며 "유로존 경제성장 회복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크지 않은 반면 부작용인 유로화 약세도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한국 경제에는 중립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민병규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과거 ECB 추가 완화정책은 외국인 수급 개선으로 연결됐지만, 전날 시장 반응을 보면 과거와 같은 수급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면서 "시장 접근에 신중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CB 통화정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면서 시장 참가자들의 이목은 오는 15~16일로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3월 정례회의로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FOMC에서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을 크게 보진 않으면서도 성명서 문구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나중혁 현대증권 연구원은 "드라기 발언 이후 유로화의 급격한 강세 전환 및 유럽 증시 급락 등의 역풍에 직면한 것은 정책 모멘텀에 냉소적인 시장 분위기를 대변하는 결과"라며 "이번 FOMC 정례회의를 통해 보다 긴밀한 국제공조의 모습이 확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성환 부국증권 연구원은 "파격적인 정책에도 드라기 총재의 립 서비스 부재로 그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됐다"며 "곧 열릴 일본은행(BOJ) 통화정책회의(14~15일)와 FOMC 같은 정책 이벤트에 대한 관망심리가 더 두터워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sj99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