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빚' 많은 30개사, 환율 손실 3조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각국의 ‘환율전쟁’ 등으로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외화(달러)부채 비중이 높은 상위 30개 기업(시가총액 1조원 이상 상장사 기준)이 환변동으로 입은 손실 규모가 3조원(작년 1~3분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과 KDB대우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자산 대비 달러순부채(달러자산-달러부채) 비중이 높은 상위 30개 기업의 외화환산손익 규모는 -2조9391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화환산손익이란 환율 변동에 따라 변하는 외화 자산과 부채의 평가액을 말한다.

외화 부채가 많으면 달러 강세 땐 원화로 평가하는 빚(당기순손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국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1월 109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올 들어 120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항공기를 미국 등지에서 수입(임대)해 쓰는 대한항공의 달러부채는 작년 1~3분기에 7683억원 늘었다. 포스코는 같은 기간 4017억원의 손실을 봤고 두산(-2406억원)과 두산중공업(-2366억원)도 빚이 늘었다.

한요섭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달러 표시 부채가 많은 기업은 보통 환헤지(위험 회피) 전략을 펴지만 국내 항공 조선 업체들은 환헤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달러 강세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어서 손실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달러부채가 많다고 무조건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 환헤지를 잘한 기업은 파생상품 부문에서 큰 이익을 냈다. 달러부채가 8조1432억원인 한국전력의 작년 1~3분기 외화환산손실은 8890억원에 달했지만 파생상품에서 8816억원을 벌어들였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통화스와프(서로 다른 통화를 약정된 환율에 상호 교환하는 외환거래)를 통해 환변동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KT는 환변동으로 2225억원의 손실을 입었지만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1815억원의 이득을 봤다.

반면 A조선사와 B항공사는 파생상품에서도 각각 1조3000억원대와 300억원대의 손실을 냈다.

환율 변동으로 손실 규모가 커진 기업들은 주가도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기 시작한 작년 4월24일 이후 자산 대비 달러순부채 비중이 높은 상위 30개 기업의 주가는 6.10% 하락(지난달 29일 종가 기준)했다. 이에 비해 달러순자산 비중이 높은 상위 30개 기업의 주가는 9.00% 올랐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