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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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1200원 시대'다. 연초부터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210원을 뛰어넘어 5년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 대비 원화의 가치가 하락(환율 상승)하면 자본 유출에 대한 공포심은 커진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해 강(强)달러의 속도전이 진행 중인 데다 위안화가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불안병이 도졌다. 글로벌 환율 전쟁에서 원화가 나아가야 할 길을 외환시장에 물어봤다. [편집자주]

# "아, 오늘도…"

서울 중국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KEB하나은행 본점(구 외환은행 본점) 건물 2층 딜링룸. 국내 최대 규모인 이곳 딜링룸에서는 요즘 시계바늘이 오전 10시30분을 가르키면 곳곳에서 탄식 소리가 들린다. 중국 증시가 개장하고 위안화 환율이 거래를 시작하는 이 시간부터 원·달러 환율도 들썩거리기 때문이다.


서정훈 KEB하나은행 외환파생상품영업부 연구위원(경영학 박사, 사진)은 최근 원·달러 환율 흐름을 좌우하는 건 미국 달러화가 아닌 중국 위안화라고 밝혔다.

그는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미국 금리 인상 여부에 따른 달러화 움직임이 원화에 최대 변수였지만 최근에는 중국이 핵심 변수가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중국 경기 둔화와 이에 따른 위안화 약세가 지속되는 걸 감안하면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약세)도 올해 내내 이어질 것"이라며 "원화의 (추세적인) 강세 반전은 2018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중국 경기 올해 추가 둔화…위안화 약세 지속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은 연일 연고점을 새로 쓰고 있다. 지난 11일 5년6개월 만에 장중 1200원선을 돌파한 데 이어 15일에는 종가 기준으로 1213.40원까지 올랐다. 전날 또 다시 상승해 1214.00원에 마감했다.

이는 해외 투자은행(IB)들이 오는 3월께 원·달러 환율이 1195원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 것과 비교하면 훨씬 가파른 상승세다.

[외환시장에 길을 묻다③] 서정훈 KEB하나은행 위원 "원화 약세 내년까지 지속…위안화가 최대 변수"
서 박사는 이같은 원화 약세 기저에 중국발(發) 경기 둔화 우려와 이에 따른 위안화 약세가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해 8월 중국 정부가 위안화를 전격 절하하면서 위안화 약세가 계속되고 있다"며 "위안화 약세로 글로벌 금융 시장 변동성은 한층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위안화 약세로 인해 달러화 강세가 심화하고 이에 따라 원화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는 상승 압력을 강하게 받는다는 설명이다.

서 박사는 "중국 정부로서는 경기 둔화를 방어하기 위해 위안화 약세를 택할 수 밖에 없다"며 "환율 전쟁을 의도한 건 아니지만 위안화 약세 여파가 글로벌 시장으로 번지면서 환율 갈등이 커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중국 경제 성장률은 6.9%로, 25년 만에 처음 7% 성장률을 달성하지 못했다. 지난해 4분기만 놓고봐도 6.8%에 그쳐 시장 예상치(6.9%)를 밑돌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내놓은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중국의 성장률을 지난해보다 0.6%포인트 낮은 6.3%로 예상했다. 내년 성장률은 6.0%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경제 견인차 역할을 하던 중국의 성장률 둔화로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도 기존 전망보다 0.2%포인트 낮은 3.4%에 머물 것으로 IMF는 내다봤다.

서 박사는 "올해도 중국발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위안화 약세 기조는 불가피하다"며 "특히 중국 경기가 더 나빠질 수 있어 위안화의 추가 절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구조 개혁을 통해 성장 모델을 바꾸고 있는만큼 이 과정에서 성장 둔화는 어쩔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림자금융, 지방정부부채 문제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성장률은 예상보다 크게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상반기 고점 1250원·하반기 저점 1150원 예상

서 박사는 중국발 불확실성 속에서 원·달러 환율이 올해 상반기 중 고점을 찍고 하반기로 갈수록 약세 속도를 늦출 것으로 전망했다.

상반기 고점은 1250원, 하반기 저점은 1150원으로 보고, 시기는 각각 2~3월, 10월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중국 경기 둔화, 위안화 약세, 유가 급락 등 대외 환경을 볼 때 올해 안에 원화가 강세로 반전할 가능성은 없다"며 "중국 정부의 구조조정이 끝나 경기 모멘텀이 살아나고 글로벌 환경이 나아지는 2018년께 강세로 방향을 틀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하반기로 갈수록 대외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걷힐 것"이라며 "원화 약세 기조 자체는 변함 없지만 속도나 폭은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다소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원화 약세는 수출 위주인 국내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 요인이다. 하지만 원화 약세가 심해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본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서 박사는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고, 대내적으로도 호재가 없는 현 시점에서 원화가 강세로 가면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다"며 "(원화 강세로) 달러화마저 들어오지 않게 되면 브라질이나 러시아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외환 당국이 수출을 끌어올리고 자본유출은 막는 적절한 지점에서 원·달러 환율을 조절해 줘야 한다"며 "이 지점을 대략 1250원 선으로 보고 있어, 이를 뚫고 올라간다면 외환 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서정훈 박사는

한양대학교 경영학 학사와 박사(재무금융)를 거쳐 2008년부터 KEB하나은행 외환파생상품영업부(조사연구부문)에 근무하고 있다. 전문 분야는 외환시장과 환율 및 국제 금융이다.

2012년부터 국회입법조사처 조사분석지원단 조사분석지원위원과 SKC 환위험관리 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2011~2012년까지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환위험관리 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역임했다.

권민경 한경닷컴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