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회계법인들이 감사 대상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해 사실상 모든 임직원의 주식 투자를 막는 강도 높은 내부통제에 나선다. 공인회계사 등 감사업무와 직접 관련된 임직원은 물론이고 감사업무와 무관한 세무·재무자문·컨설팅부문 직원까지도 해당 회계법인이 감사하는 회사 주식 투자를 금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불거진 회계사들의 주식 불공정거래 사태의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지만 “개인의 경제활동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직원, 감사기업 주식 투자 하지마라"…회계법인 '빅4' 고강도 내부단속 나선다
◆삼일 “담당 부서장도 해임”

10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삼일 삼정KPMG 딜로이트안진 EY한영 등 국내 주요 회계법인에 ‘단순사무직을 제외한 모든 재직 임직원에 대해 해당 회계법인에서 감사를 맡고 있는 기업의 주식 투자를 전면 제한’하는 내부지침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삼정 안진 한영은 올해부터 인사 총무 홍보 등 사내 지원업무를 하는 직원을 제외한 전 직원에게 피감사기업에 대한 주식 투자를 금지할 방침이다. 감사부문은 물론 세무 재무자문 컨설팅 연구소 등 감사와 상관없는 부문의 임직원도 주식 투자 제한대상에 포함된다.

삼일은 기준을 보다 강화해 주식 투자 제한 대상에 지원부서 직원까지 모두 포함했다. 이에 따라 한국 대표기업 삼성전자를 감사하고 있는 삼일의 임직원 3000여명은 앞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살 수 없다. 삼일은 또 불공정거래를 한 직원은 물론 담당 부서장에게도 책임을 물어 최고 해임까지 검토하는 강도 높은 내부통제에 나설 방침이다. 안진은 매니저급 이상은 가족의 주식 매매내역도 2주 이내 신고하도록 했다.

2014 회계연도 기준(2014년 4월~2015년 3월) 삼일이 감사한 상장사는 355개사, 삼정은 225개사, 안진은 249개사, 한영은 162개사다.

회계법인들은 또 임직원의 주식 취득과 보유 상황에 대한 신고도 의무화하기로 했다. 신고내역이 적정한지 주기적으로 증권예탁원 조회 시스템을 통해 점검하고 신고내역이 사실과 다른 직원은 징계하기로 했다.

이번 방안은 지난해 주요 회계법인 소속 일부 회계사가 미공개 감사정보를 이용해 수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면서 회계법인의 자정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너무 획일적인 규제 아니냐” 불만도

회계업계에서는 이번 내부통제 방안을 놓고 “회계업계가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의견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침해”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회계사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됐지만 일부 회계사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감사와 무관한 임직원의 주식 투자까지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번 조치는 감사 대상 기업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따지기보다는 ‘회계법인 소속 임직원 전원’이라는 다소 획일적인 기준이 적용됐다. 심지어 일부 회계법인은 한발 더 나아가 임직원에게 감사를 하지 않는 기업 주식 투자도 모두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 회계법인 회계사는 “예를 들어 국토교통부 공무원이 부동산 투기를 하다 적발될 경우 모든 국토부 공무원에게 부동산 투자를 금지하자는 얘기와 다를 것이 없다”며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종사자 전체를 잠재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