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안이 주주총회에서 승인된 17일 두 회사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합병이 성사되면 주가가 오를 것이란 당초 예측과는 다른 결과다.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방이 마무리된 시점을 틈타 차익실현에 나선 투자자가 많았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 주가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1.79% 오른 130만5000원에 마감했다.
재료 썼으니 차익실현…삼성물산·제일모직 곧 '진짜 주가' 나온다
◆합병 발표 직후 무너진 주가

삼성물산 주가는 이날 장 초반 강세로 출발했다. 오전 장 한때 전날 종가(6만9300원)보다 3% 이상 오른 7만1800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삼성물산 주총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안이 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였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매물이 쏟아지면서 주가가 6만2100원(전날보다 10.39% 급락)까지 밀렸다. 제일모직의 주가흐름도 삼성물산과 엇비슷했다. 주총 결과 발표 후 하락세로 돌아서 전날보다 7.73% 떨어진 17만9000원에 마감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주가는 1 대 0.347로 합병비율(1 대 0.35)에 거의 수렴했다.

강현철 NH투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단기 차익을 노리고 주식을 산 투자자 가운데 상당수가 주가를 이끌 만한 이슈가 사라진 것으로 해석했다”며 “일단 끊고 가자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합병이 무산됐다면 주가 하락폭이 훨씬 더 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가 하락을 부추긴 것은 국내 기관들이었다. 자산운용사 중 상당수가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동시에 두 회사 주식을 팔아 차익을 실현했다는 해석이다. 이날 기관 계좌를 통해 쏟아진 순매도 물량은 삼성물산 532억원어치, 제일모직 535억원어치였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전략 담당 이사는 “주총 개표 시점부터 기관들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식을 팔아치웠다”며 “두 회사 합병을 반대했거나 주주 환원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을 우려한 기관들이 ‘팔자’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합병에 반대해온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날 제일모직을 331억원어치, 삼성물산을 968억원어치 내다 파는 등 ‘실망 매물’을 쏟아냈다.

◆“주주 환원정책이 주가 반등 열쇠”

전문가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가 단기 조정을 거친 후 상승 쪽으로 방향을 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날 조정으로 가격 매력이 커진 만큼 저가 매수세가 유입될 것이란 분석이다. 두 회사가 조만간 배당확대와 같은 구체적인 ‘당근’을 제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국투자신탁운용에서 한국투자삼성그룹펀드를 운용하는 백재열 매니저는 “하루 이틀 단기 차익실현 매물이 빠져나간 후에야 주가 방향이 정해질 것”이라며 “삼성이 주주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을 내놓으면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장기 주가는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장 증설, 손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 등의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신성장동력으로 정한 사업들이 안착하는 모습이 나타나면 장기 투자자가 늘어날 것이란 설명이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제대로 된 주주환원 정책이 나오느냐, 두 회사 합병으로 시너지 효과가 나느냐 여부가 향후 주가의 열쇠”라며 “주주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기 전까지는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지혜/허란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