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 미디어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이신영 씨가 같은 과 선후배들과 ‘움직이는 레고를 만들자’며 의기투합한 건 2013년이다.

이씨는 전원을 연결해 조종할 수 있는 블록(비트큐브) 개발에 들어가 1년 만에 시제품을 내놓았다. 생산에 필요한 1억원은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으로 마련할 계획이었다. 계산은 빗나갔다. 2013년 6월 발의된 관련법이 아직도 국회에서 맴돌고 있어서다. 이씨는 “이러다 유사제품이 먼저 나오면 비트큐브는 빛도 못 본채 사장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크라우드 펀딩법’으로 불리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선진화법에 막혀 2년째 표류하고 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 불특정 다수로부터 쉽게 투자받을 수 있도록 해 ‘창조경제 핵심 법안’으로 주목받았지만, 1차 관문(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일부 야당 의원이 “투자자 보호가 미흡하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보완해오자 이들은 “야당이 제안한 법안을 받아주면 통과시켜 주겠다”며 크라우드 펀딩법을 ‘흥정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상임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법안만 본회의에 상정하도록 한 국회 선진화법의 폐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합의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상임위 논의 때 야당 의원 한두 명만 반대해도 법안 처리가 무한정 지체돼서다.

■ 크라우드 펀딩

crowd funding. 온라인 펀딩 사이트에서 다수의 소액투자자로부터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금융회사나 벤처캐피털에서 자금을 받기 어려운 초기 벤처기업이 주로 이용한다.

오상헌/허란 기자 ohyeah@ha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