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구 기자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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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증권업계는 한마디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이었다. 실적만 보면 전년보다 사정이 훨씬 나아졌다. 지난해 1~3분기 증권사들의 순이익은 1조395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3.5% 늘었다. 한국은행이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내리자 채권 가격이 상승해 증권사들이 보유한 채권 가치가 껑충 뛴 덕분이다. 여기에 지점 통폐합 등에 따른 고정비 절감 효과가 더해졌다.

하지만 내실 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주식 거래 위축으로 증권사들의 ‘캐시카우’인 위탁 수수료 수입이 줄었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먹거리가 나타나지 않았다. 증권사들이 올해 경영 화두로 ‘새로운 수익원 창출’ ‘조직 효율성 제고’ 등을 내세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새해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올해 증권업 업황과 관련해 ‘부정적’이란 평가를 내놓았다. 급격히 늘고 있는 가계부채, 지지부진한 증시 등을 감안할 때 갑자기 주식 거래량이 늘어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증권사들이 강조하는 새로운 먹거리 발굴 작업 역시 단시일 내에 이뤄질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 대외 환경 측면에서는 미국의 금리 인상, 정부의 소비자 보호 규정 강화 등이 증권사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저금리 기조는 호재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시중은행 금리가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 만큼 높은 수익률을 위해 일부 자산을 증권사들이 판매하는 금융투자상품 쪽으로 돌릴 가능성이 있다. 고령화도 악재로만 볼 수 없다는 분석이다. 과거 안정성만을 추구하던 고연령 투자자들이 긴 노후에 대비하려는 목적으로 증권사 고수익 상품 쪽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해석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사회를 맞은 일본은 고령층의 주식투자 비중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자산관리역량 집중 육성

증권사들은 기회 요인을 극대화하기 위해 올해 일제히 자산관리 부문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산관리에 나서는 투자자들을 잡아야 주식 거래 수수료 감소로 인한 손실을 메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통해 고객자산운용담당과 상품전략담당을 상품전략담당으로 통합했다. 전략과 운용이 한꺼번에 이뤄져야 더 효율적인 자산관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미래에셋증권도 자산배분센터, 연금사업센터, 리서치센터를 아우르는 투자솔루션부문을 신설했다.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자산을 잘 불려주는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곳도 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주식뿐 아니라 금융상품까지 포함한 투자자의 총 자산에 대해 매월, 분기, 연간 단위로 수익률을 평가하고 직원들 성과에 반영하고 있다.

신시장 개척만이 살길

각론으로 들어가면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퇴직연금과 해외 주식투자 부문에서 지위를 공고히 한다는 목표를 잡은 증권사들이 많이 눈에 띈다. 퇴직연금 시장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DB형(회사가 일임 투자) 상품을 DC형(개인이 직접 투자)으로 바꾸려는 수요가 꾸준해서다. 정부가 올해부터 개인퇴직연금(IRP) 계좌를 통해 금융상품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한 것도 연금시장 활성화에 보탬이 될 전망이다.

해외 주식투자 수요를 선점하는 것도 증권사들의 목표로 꼽혔다. 홍콩과 상하이증시의 교차 구매를 허용하는 후강퉁 시행과 관련해 중국 시장에 투자하는 고객들이 핵심 영업대상이다. 대만계 증권사인 유안타증권은 200여명의 현지 애널리스트를 통해 얻은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삼성증권도 투자전략센터 내에 ‘차이나 데스크’라는 중국주식 정보 전담 조직을 신설키로 했다.

고정비 줄이고 또 줄여야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59개 증권사 임직원 수는 3만6972명으로 1년 전(4만1222명)보다 10.31%가량 줄었다. 1509개였던 증권사 지점도 같은 기간 통폐합을 거쳐 1265개로 16.1% 감소했다. 직원과 점포 수를 줄이자 판매관리비가 감소했다. 지난 1년 사이 이 두 항목으로 증권업계가 절감한 비용은 1837억원에 달한다.

증권사들은 올해도 인건비, 지점 운영비 등의 고정비를 줄여 나갈 계획이다. 더 버는 것보다 확실한 생존법이 덜 쓰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일부 증권사들의 합병도 조직 슬림화의 한 요인이다.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의 통합으로 만들어진 NH투자증권은 기존 점포를 광역점포로 바꾼다는 방침을 세웠다. 많은 점포보다는 똑똑한 점포가 비용도 덜 들고, 투자자들에게도 보탬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