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視界) 제로.’

국내 대기업들이 잔뜩 웅크린 모양새다. 올해 화두가 ‘불확실성 대비’와 ‘리스크 관리’다. 미국 금리 인상, 중국 경기 둔화, 환율 변화 등 다양한 변수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다. 정부 관심사인 배당 확대는 물론이고 설비투자, 자금조달 등 기업의 핵심 활동 대부분이 안갯속에 갇혀 있다. 당분간은 ‘생존형 몸만들기’로 만약을 대비하겠다는 게 기업들의 전략이다.
[마켓인사이트] 대기업 70% "투자 유보"…위기 대비 '실탄' 확보
◆‘생존 우선’ 전략에 초점

한경 마켓인사이트 조사 결과 ‘올해 생산이나 유통, 서비스 개선을 위한 설비투자에 나설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26명의 대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 중 11명이 ‘미정’이라는 답을 내놨다. ‘없다’는 응답도 7명이나 됐다. 방어적 재무전략을 짜 놓은 경우가 전체의 69%를 차지한 것이다. 대다수가 ‘리스크 관리’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배당 확대’ 역시 계획이 있는 기업은 3곳(12%)에 그쳤다.

‘장사가 잘돼 잉여현금이 생길 경우’라는 전제에도 기업들의 방어적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1순위가 ‘차입금 상환(또는 차환)’이었으며, 설비 투자와 신규 사업 투자 등은 각각 2순위, 3순위로 밀렸다.

◆“일단 현금 쌓고 보자”

기업들의 방어적 경향이 커지면서 ‘현금 비축’에 대한 필요성도 커졌다. CFO 3명이 올해 업무 1순위로 현금 비축을 꼽았다. 2순위와 3순위에도 각각 4명, 6명이 ‘현금 비축’을 우선 업무로 제시했다. 해외시장 개척(2명)보다 앞선 순위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값비싼 부채는 빨리 갚고, 싼 이자로 실탄을 확보한 뒤 즉각적인 개선효과를 볼 수 있는 인수합병(M&A) 등으로 국면 전환을 도모하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업 구조조정과 부채 감축을 선제적으로 마무리한 일부 기업은 다수의 일반 기업과는 반대로 공격성을 띨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환율이 1100원에 가까운 현 상태가 유지될 경우 적어도 상반기에는 수출 환경 개선에 따른 이익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규 사업 발굴과 해외사업 투자 확대 등에 나서겠다고 답한 소수 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 신용평가사 임원은 “일부 기업들은 저금리와 달러 강세, 저유가 등에 힘입어 연구개발 투자 확대 등 장기전을 준비할 호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M&A, 필요하지만 상황 봐서”

M&A 시장에 대해서는 일단 관망하겠다는 입장이다. ‘M&A 계획이 없다’는 답이 16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만, 9명은 ‘필요할 경우 하겠다’고 말해 가능성을 열어놨다. 당장 매물을 찾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한 매물이 출현하면 과감히 실탄을 쏘겠다는 얘기다.

올해 경기에 미칠 가장 큰 변수로 미국 금리 인상(4곳)보다 중국 경기 둔화(8곳)를 꼽은 곳이 더 많았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 금리 인상은 이미 예고된 변수인 만큼 어느 정도 대응할 여지가 있지만,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주력 수출시장인 중국이 침체에 빠질 경우에는 수출 물량이 직접 줄어드는 만큼 더 민감하게 주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문에 참여한 기업=기아차 대우인터내셔널 동국제강 동부대우전자 롯데쇼핑 롯데케미칼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자 삼양그룹 쌍용차 아시아나항공 포스코 한진해운 한화 한화건설 현대오일뱅크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현대차 효성 GS건설 GS칼텍스 LG전자 LG화학 LS산전 SK이노베이션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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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