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기냐 감시자냐…사외이사의 '두 얼굴'
#1. 코스닥시장의 대표 바이오기업 젬백스는 지난해 이사회를 58차례나 열었다. 타 법인 인수, 계열사 지급 보증 등 현안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사 사외이사 두 명은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연 1350만원씩 받아갔다.

#2. 윤용로 외환은행장은 지난 20일 퇴임했다. 연임이 무난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지만 사외이사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나금융지주 경영진은 연임을 원했지만 경영발전보상위원회 4명 중 3명인 사외이사들의 반대 의사가 워낙 강경했다는 후문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도입돼 15년간 운영돼온 사외이사제도가 여전히 겉돌고 있다. 사외이사제는 외부 전문가를 경영에 참여시켜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일부 회사에서는 이런 순기능이 나타나고 있지만, 상당수 회사에서는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에 머물고 있거나 경영진과 유착해 ‘그림자 권력’으로 행세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경제신문이 유가증권시장 500개와 코스닥시장 500개 등 1000개 상장사 사외이사들의 지난해 활동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 사외이사의 역할이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이사회 출석률이 50%에도 못 미치는 사외이사를 둔 상장사는 277개로 전체의 27.7%에 달했다. 최근 국민연금이 “이사회 출석률이 낮은 사외이사를 재선임할 경우 반대표를 던지겠다”며 내놓은 출석률 가이드라인(75%)에 미달한 사외이사를 둔 상장사는 389개(38.9%)였다.

그런가 하면 ‘이사회 출석률 0%’인 사외이사가 있는 곳도 삼천리 팜스코 등 78곳(94명)에 달했다. 이트론의 사외이사 네 명은 전원 ‘출석률 0%’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에 비해 ‘주인 없는’ 금융회사나 공기업에서는 사외이사들의 목소리가 경영진을 압도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KB금융 사외이사들은 2012년 말 ING생명 인수 안건을 부결시켰다. 강원랜드 사외이사들은 실무진의 반대 의견에도 부실기업에 돈을 빌려줬다가 150억원의 손실을 입히기도 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외이사제도가 지금처럼 운영된다면 영향력 있는 전직 관료나 법조인, 교수 등에게 용돈을 쥐여주는 이상의 의미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달에 집중된 주주총회에서 새로 선임됐거나 선임될 예정인 사외이사는 775명(1000개사 기준)에 달한다.

조진형/오상헌/김일규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