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3월18일 오후 4시 36분

서명석 동양증권 사장은 18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동양증권의 명성을 되찾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동양증권 제공
서명석 동양증권 사장은 18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동양증권의 명성을 되찾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동양증권 제공
“고객님의 아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서명석 동양증권 사장은 18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도중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작년 10월 동양그룹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 이후 회사가 문을 닫을 뻔한 위기가 수없이 찾아왔던 기억이 스쳐간 때문일까. 개인 피해자만 4만1000여명, 피해 예상액만 1조6000억원에 달하는 ‘동양사태’ 이후 영업이 사실상 중단된 동양증권은 지난 13일 대만 유안타증권에 매각하게 되면서 ‘기사회생’했다.

이날 그는 “지난 6개월간 동양증권은 ‘죄와 벌’이란 화두에 지배당했다”고 말했다. 계열사 회사채와 CP를 마구 팔았다는 책임으로 ‘동양사태’의 주범이란 낙인이 찍힌 것이다. 고객자금 15조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회사는 사실상 청산 직전에 내몰렸다. “직원 2400여명과 그 가족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어떤 식으로든 고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서 사장은 “마지막 지푸라기는 회사 매각이었다”고 말했다. 작년 10월 말 극비리에 혼자 대만으로 출국했다. 대만 1위 증권사 유안타증권과 접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유안타증권은 2004년 LG투자증권(현 우리투자증권) 인수 실패라는 ‘트라우마’가 아물지 않았던 터라 첫 만남부터 냉랭했다. 그는 프레젠테이션에서 동양증권의 모든 정보를 정직하게 공개해 신뢰를 얻기로 했다.

[마켓인사이트] 서명석 동양증권 사장 "고객 아픔 잊지 않겠습니다…"
“1시간은 설명하고, 2시간은 유안타증권 대주주 측의 질문을 받았는데 검찰조사를 받는 기분이었다”고 서 사장은 회고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서툰 영어로 매일 새벽까지 유안타증권을 전화로 괴롭혔다. “한국 증권시장이 아시아에서 가장 저평가돼 있다” “이번에 안 사면 후회할 것”이라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래서인지 그해 11월 유안타증권은 인수 실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고비는 또 찾아왔다. 2월 초순 동양증권 매각 예비입찰 때 유안타증권 외에는 참여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던 것. 회사채·CP 등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금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KB금융지주 등이 등을 돌렸다. 유안타증권 내부에서도 “한국에서 아무도 참여하지 않는 증권사 M&A에 왜 우리가 들어가느냐”는 회의론이 급속히 번져나갔다. 내부의 반대에 시달렸던 대만의 협상파트너는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했다.

‘안갯속’이었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것은 본계약 체결 전날인 12일 오후 4시. 서 사장은 “동양증권은 반드시 살아난다”며 “아무도 안 사면 내가 사겠다”고 마지막 설득을 했다. 이번이 한국 진출의 마지막 기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날 유안타증권은 동양증권 인수 계약을 맺었다.

그는 작년 10월부터 6개월간 1시간마다 잠에서 깨는 수면장애에 시달렸다. 그는 “매각대금으로 개인투자자 등 채권자의 빚을 갚는 데 쓰일 것”이라며 “이제야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