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2월16일 오후 4시

증시에 상장된 중견기업들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전환사채(CB)가 각광받고 있다.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필요한 돈을 조달할 수 있고, 유상증자에 비해 대주주 지분율이 희석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유에서다.

증권업계에선 작년 9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발행이 금지된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빈자리를 CB가 어느 정도 메우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CB 시장이 커지면서 발행기업이 해당 CB를 되살 수 있는 조기매수청구권(콜옵션)이 붙은 새로운 형태의 상품도 나오고 있다.

[마켓인사이트] BW 금지되니…CB 5개월새 1조 시장

○CB 발행물량 3배 증가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분리형 BW 발행이 금지된 지난해 8월29일부터 지난 14일까지 약 5개월여 동안 발행된 CB 규모는 1조1485억원(70건)으로 집계됐다. 작년 3월15일~8월28일 발행물량(3125억원·21건)에 비해 3.6배 늘어난 셈이다.

CB란 기업이 회사 운영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의 일종으로, 만기가 되면 투자자에게 ‘원금+이자’를 돌려주되 당초 약정한 조건에 맞으면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증권을 말한다.

예컨대 10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한 A사(현 주가 3000원)가 △채권으로 3년 만기 보유시 8% 이자 지급 △1주당 3500원에 보통주 전환 등을 조건으로 CB를 발행했다고 가정하면, 투자자는 일단 원금과 이자가 보장된 채권으로 보유하다 주가가 급등하면 주식으로 바꿔 투자 차익을 거둘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분리형 BW의 경우 대주주가 투자자들로부터 신주인수권(워런트)만 따로 살 수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자금을 손쉽게 조달하면서 대주주 지분율 희석도 막을 수 있었다”며 “분리형 BW 발행이 금지되면서 대주주들이 그나마 저렴한 비용에 자금을 조달하고 지분율 희석도 최소화할 수 있는 CB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콜옵션 붙은 CB도 등장

CB를 통한 자금조달이 늘었지만, 언제든 대주주 지분율이 희석될 수 있다는 건 발행기업 입장에선 부담이다.

주가가 전환가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CB 투자자들의 주식 전환 수요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주주가 ‘돈이 달려’ 지분율만큼 CB를 매입하지 못한다면 ‘주가상승=대주주 지분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온 게 발행 회사 측에 채권(전환권 포함)을 되살 수 있는 권리를 준 ‘콜옵션부(附) CB’다. 전환권 행사로 대주주 지분율이 크게 하락할 것으로 우려될 때 회사 측이 CB를 주식으로 바꾼 뒤 자사주로 편입, 사실상 대주주의 우호지분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스마트카드 제조업체 유비벨록스는 지난달 28일 100억원 규모 CB를 발행하면서 50억원에 대해 회사가 되살 수 있는 콜옵션을 걸었다. 사료 제조업체 이지바이오와 휴대폰 부품업체 크루셜엠스도 지난해 콜옵션이 붙은 CB를 발행했다. 이지바이오는 총 발행액 300억원의 50%에 대해 콜옵션을 걸었고, 크루셜엠스는 50억원 규모 CB를 발행하면서 15억원에 대해 콜옵션을 달았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CB는 전환권과 사채권이 분리되지 않는 만큼 발행회사가 콜옵션 행사를 통해 대주주 우호지분을 확보하려면 CB를 통째로 사들여야 한다”며 “분리형 BW에 비해 훨씬 많은 돈이 드는 만큼 CB가 분리형 BW를 얼마나 대체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