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터키 채권 투자한 자산가들 '멘붕'
지난해 10월 브라질과 터키 국채를 각각 1억원어치 매입한 김일수 씨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소식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브라질 채권의 평가손실이 1500만원에 달하고, 터키 채권으로도 1800만원을 날렸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 6월 시작된 신흥국 채권값 급락 쓰나미가 9월 이후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고 보고 투자에 나섰는데 낭패를 봤다”며 “지금이라도 손절해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신흥국 국채 투자자 ‘패닉’

Fed가 신흥국 금융위기 우려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월 100억달러 수준의 테이퍼링을 진행해 나가면서 신흥국 채권 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지고 있다. 신흥국 경제 불안 고조로 채권금리가 상승하면서 채권값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신흥국 통화가치가 하락한 것도 국채 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진 이유로 꼽힌다. 국내 증권사들이 들여와 판 신흥국 국채는 환 헤지가 되지 않아 해당국 통화가치 하락이 평가손실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브라질·터키 채권 투자한 자산가들 '멘붕'
대신증권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브라질의 기준금리는 연 9.5%였지만 3일 현재 연 10.5%로 높아졌다. 터키 중앙은행은 테이퍼링 규모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전인 지난달 28일 연 4.5%였던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5.5%포인트 인상했다. 금리를 올려도 통화가치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이후 원화 대비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8%, 터키 리라 가치는 12%가량 떨어졌다.

증권업계에서는 지난해 판매된 브라질 국채가 2조원어치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삼성증권(8300억원)과 미래에셋증권(5300억원) 창구에서만 1조3600억원어치가 판매됐다. 증권사들이 브라질 채권의 비과세 혜택을 내세우며 자산가의 자금을 대거 끌어들였다는 설명이다. 터키 채권은 주로 KDB대우증권에서 판매됐으며 지난해 판매된 물량은 40억원어치 수준이다.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자의 손실도 만만치 않다. 올 들어 지난달 29일까지 신흥국 채권형펀드는 평균 1.37%의 손실을 냈다. 지난 1년으로 기간을 확대하면 손실 폭은 8.5%로 늘어난다.

당분간 손실 불가피

전문가들은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서든스톱’(자본의 급격한 유출) 위험이 가장 높은 국가군으로 분류한 브라질,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우크라이나 등을 중심으로 국채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FOMC가 신흥국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고 테이퍼링 스케줄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만큼 추가 금리 인상, 채권값 하락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신흥국들의 공식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4월 이후 7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한 브라질 중앙은행의 알레샨드리 톰비니 총재는 “금리 인상이야말로 신흥국 시장 회복에 꼭 필요한 조치”라며 주변 신흥국에 금리 인상 대열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김상훈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현재 월 650억달러 수준인 양적완화 강도가 450억달러 수준으로 줄어드는 시점까지는 신흥국 채권 가치가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승 KB투자증권 연구원은 “테이퍼링이 끝나도 미국이 금리 인상을 추진하면 테이퍼링 이상의 충격이 신흥국 시장을 강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손실 규모가 커진 투자자에 대해선 “투자금이 여유자금이라면 10년 만기 때까지 버티는 게 낫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만기까지 채권을 보유하면 약속된 금리를 받을 수 있어서다. 연 9~10% 수준의 채권 이자가 환 손실을 어느 정도 메워준다고 가정하면 현재 시점에 손절하는 것보다 이익이라는 계산이다.

송형석/안상미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