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의 시위 > 법정 관리를 신청한 동양그룹 계열사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샀다가 피해를 보게 된 투자자 2000여명이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한 시위 참가자가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눈물의 시위 > 법정 관리를 신청한 동양그룹 계열사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샀다가 피해를 보게 된 투자자 2000여명이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한 시위 참가자가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5개 동양 계열사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샀다가 피해를 보게 된 투자자 2000여명이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집결해 항의 시위를 벌였다.

투자자들은 “안전합니까? 안전합니까? 열 번 스무 번 물었습니다” “동양의 대국민 금융사기극을 즉각 엄벌하라”고 쓴 피켓을 들고 금융당국이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일부 투자자는 “현재현을 구속하라” “금감원에 쳐들어가자”는 구호를 외쳤고, 금감원에 진입해 집기를 부수거나 입구에서 드러눕기도 했다.

CP 사기판매·배임혐의로 고발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가운데 감독 당국의 ‘관리 소홀’과 동양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피해를 키운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금감원은 2009년부터 동양증권이 계열사 CP를 판매하며 지원해온 사실을 알고 통제해왔다. 그러나 2011년 6월부터 동양증권이 통제권을 벗어나 CP를 발행했음에도 금감원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009년 5월 김종창 당시 금감원장은 CP를 판매하며 계열사 자금 창구 역할을 해온 동양증권의 유준열 당시 사장과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2009년 이전엔 신탁업감독 규정으로 CP를 특정금전신탁에 편입시켜 계열사를 지원하는 걸 막을 수 있었으나 자본시장법 시행(2009년)으로 이 규정이 사라지자 MOU로 동양증권 CP 판매를 통제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MOU는 오래가지 못했다. 목표치에 따라 2009년 말 6200억원, 2010년 말 5700억원으로 판매를 줄여온 동양증권은 2011년 6월부터 MOU를 어기기 시작했다. 그해 말 7400억원으로 목표치(4700억원)를 훌쩍 넘겨버렸다. 금감원 관계자는 “2011년 7월부터 MOU를 지키라고 동양증권에 촉구했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어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동양증권은 2012년 6월 7500억원, 2012년 말 7100억원어치의 계열사 CP를 팔았다. 동양증권 전직 임원은 “동양그룹의 CP 의존도가 높아져 하루라도 판매가 막히면 부도가 날 수 있는 위험한 재무 구조가 형성됐다”며 “금감원이 강한 조치를 내렸더라면 투자자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10일 오후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동양증권의 CP 불완전판매에 대해 ‘기관경고’와 5000만원의 과태료 부과 이상의 ‘중징계’를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작년 8월 동양증권 부문검사에 따른 조치”라며 “금융위원회를 거쳐 제재를 확정하겠지만 ‘기관경고’ 이상 또는 ‘일부 영업정지’ 등의 강도 높은 제재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금감원 조사 결과 동양증권은 계열사 CP를 신탁상품에 편입시켜 1만1000여명의 고객에게 신탁계약서(서면)가 아닌 전화로 주문(1만6000여건, 6700억원)을 받는 등 불완전 판매했다. 금감원은 이승국 당시 동양증권 사장에 대해서도 중징계를 내릴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사장은 당시 금감원 강왕락 금융투자검사국장, 김복만 팀장 등과 교감을 갖고 동양그룹에 강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취임 1년여만인 지난 6월 자진 사임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