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환율부터 살펴봅니다. 해외 법인과의 회의 때문에 밤샘근무도 허다하고요.”(현대자동차 재무담당 A부장)

현대·기아차가 환율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24, 25일 실적 발표를 앞두고 하루에도 두세 차례 긴급 회의를 연다. 현대차 관계자는 “출근하면서 환율 시황 뉴스를 훑어보고 업무 중에는 특이사항이 없는지 수차례 보고한다”며 “시계보다 환율 전광판을 더 자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자동차 수출 관련 부서도 마찬가지다. 기아차 해외영업본부 관계자는 “작년부터 우려했던 달러화 약세에 엔저 현상까지 겹쳐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며 “환율이 큰 변수로 떠오르면서 올해 사업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24시간 비상체제 들어간 현대차

현대·기아차는 올해 초 원·달러 환율이 1060원대까지 떨어지자 24시간 환율 비상 감시팀을 가동하고 있다. 연간 사업 기준 환율을 1050원으로 설정했으나 이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원·엔 환율이 100엔당 1200원 선이 무너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이런 위기감은 숫자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해 1~11월 현대차는 176억8500만달러, 기아차는 126억8800만달러를 수출했다. 지난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인 1126원76전에서 올해 기준 환율인 1050원을 적용하면 2조2000억원 이상 매출이 감소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대차보다 수출 비중이 높은 기아차는 환율에 영향을 더 받는다.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차의 수출 비중은 전체 판매량의 28.1%, 40.1%였다. 현대·기아차의 해외생산 비중이 전체 생산량의 절반을 넘었음에도 환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출 감소 우려

환율 쇼크가 지속되면 완성차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울산발전연구원은 원·엔(100엔)이 1% 하락할 때 현대차 수출 대수는 1%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지난해 1~11월 현대 승용차 수출 대수는 104만968대로, 앞으로 엔화 가치가 1% 떨어지면 1만대가량 수출이 줄어들 전망이다.

한국·일본 자동차업체의 주가 그래프도 엇갈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작년 11월 이후 도요타 주가는 39%, 혼다는 42% 각각 오른 반면 현대차 주가는 0.9%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영국 투자업체 파이어니어 인베스트먼트의 안젤로 코르베타 대표는 “원화와 엔화의 움직임은 한국 자동차업체의 부(富)가 일본 기업으로 옮겨간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차 부품업체·전자업계도 비상

엔저 충격은 완성차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품산업도 똑같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환율 변동에 취약한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더욱 크다.

부품업체 A사 사장은 “현대차가 올해 생산량을 30만대 늘리는데 대부분 해외공장 물량”이라며 “국내 생산량이 줄어 주문이 줄까 걱정인데 엔저까지 겹쳐 경영계획을 다시 짜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B사 사장은 “환율 변동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공급단가 인하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전자산업에도 엔저 영향이 조금씩 미치고 있다. TV의 경우 소니와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 업체들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를 개발하는 등 기술 격차를 급격히 줄이고 있는 가운데 엔저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게 되면 세계 TV 시장 1, 2위인 삼성전자 LG전자를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의 점유율이 예전보다 높지 않은 편이지만 조만간 엔저 영향이 닥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예진/최진석/김현석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