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33세 '슈퍼개미' 정성훈, 10년새 130억 자산가 된 투자비밀은?
주식시장은 전쟁터다. 불과 몇 분과 초 차이로 탄식과 기쁨이 엇갈린다. 누군가는 돈을 잃고 일부는 승리자가 된다. '슈퍼개미' 정성훈 씨(33·사진)는 기업의 성장스토리를 쫓는 자신만의 투자 방식으로 이 전쟁터에서 살아 남았다.

지난 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한경닷컴>과 단독인터뷰를 가진 정 씨는 "기업의 가치와 성장스토리만을 투자의 제1원칙으로 삼고 사업 모델에 대해 연구하고 직접 회사를 찾아 다닌다"며 "수익구조에 대해 이해가 되고 성장스토리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는 기업에 투자할 때 적중률이 높았다"고 자신의 투자노하우를 공개했다.

현재 정 씨는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로만손 주식 147만422주(9.65%)를 보유하고 있는 '슈퍼개미'다. 보유지분은 로만손 2대주주(10.58%)와 비슷한 수준이고, 지난 7일 종가(5480원) 기준 환산금액은 80억5700만원이다. 이 중 주식담보 대출을 통해 빌린 6억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기자금이다.

이 외에도 보유하고 있는 크라운제과 2만7000주(7일 종가 16만9000원)와 소프트맥스 7만주(8470원)까지 포함하면 정 씨� 총 보유주식 평가액은 130억원이 넘는다.

2009년부터 로만손에 70만주정도를 투자해왔던 정 씨는 지난 3월 29일 로만손 주식 127만3312주(8.57%)를 보유하고 있다고 처음으로 공시하며 '커밍아웃'했다. 이후 지난달에도 부모님과 동생 등 특수관계인 3인과 함께 로만손 주식 19만7110주를 추가 매수했다.

이 과정에서 주식담보 대출을 이용한 정 씨는 "투자 대상이 되는 회사에 투자할 만한 이유 만큼이나 투자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뭔지에 대해서도 고민한다"며 "남는 돈을 가지고 여유롭게 투자하는 게 아니라 레버리지(차입금 투자)도 일으키면서 모든 걸 걸고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하다가 안 되면 말고 하는 식의 도박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로만손, 3년 동안 '뜯어보고 잘라 보고'…1년에 150여개 기업 탐방

회사에 대해 하나에서 열까지 다 뜯어보고 잘라 본 뒤 최종 투자 결정을 한다는 정 씨. 그는 최근까지도 일주일에 2~3개 기업을 꾸준하게 찾아다니며 1년 새 150여개의 기업을 직접 탐방했다.

로만손 역시 투자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3년 동안 문턱이 닳도록 쫓아 다녔다. 그는 "지분 공시를 하면서까지 투자에 대한 확신을 얻는데 3년이란 긴 시간을 고민했다"며 "로만손의 현재 사업구조, 특히 '제이에스티나'라는 주얼리·가방 브랜드의 성장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정 씨는 "투자 기업을 고르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변화하는 살아 있는 기업, 나름의 성장스토리를 쓸 수 있는 회사인지 여부"라며 "로만손도 과거 시계 제품을 생산하던 회사에서 인기있는 주얼리·가방 브랜드를 갖춘 회사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고 언급했다.

특히 제이에스티나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지난 4~5년 간 회사 측이 제이에스티나의 순수 마케팅비용에만 연 60억~7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봤다. 김연아 소녀시대 김수현 등을 모델로 고용해 높인 브랜드 이미지가 큰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실제로 제이에스티나는 '김연아 귀걸이' '서현 지갑' 등으로 서서히 유명세를 탔고, 회사 매출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2003년 매출이 15억원에서 2010년 매출이 533억원으로 연평균 30%씩 성장했다.

그는 이 같은 투자 방식으로 현재 로만손 외에도 크라운제과와 소프트맥스에도 투자하고 있다. 크라운제과의 경우에도 수험생이 대입시험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회사에 대해 공부를 했다고 털어놨다.

투자를 하기 전에는 반드시 기업의 수익구조에 대해 납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정 씨는 "크라운제과는 통계청 자료를 통해서 전체 과자 시장의 업체별 출하량과 가격지수 자료를 검토한 결과 2006년 무렵 유해 물질 논란이 발생했을 때도 출하량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후에 가격지수가 인상되는데도 출하량이 줄지 않고 오히려 서서히 늘어나는 것을 보고 매수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대학생 때는 '묻지마 투자'로 천당과 지옥 오가

2003년 그가 주식 시장에 입문했을 때에도 지금과 같은 성공 투자원칙을 세웠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여느 개인투자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당시에는 재무제표를 보거나 탐방을 통해 회사의 가치를 판단하겠다는 생각 조차도 없었다. 오직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에 여기저기서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자를 해왔다.
[단독]33세 '슈퍼개미' 정성훈, 10년새 130억 자산가 된 투자비밀은?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샀던 주식이 현대상선이다. 해운사를 배 만드는 조선회사라고 착각할 정도로 주식 문외한이었다. 그동안 모아뒀던 돈, 수 백만원을 모두 투자했다. 당시 매입단가는 주당 1000원으로 이라크 전쟁 이슈 덕분에 주가는 3000원대까지 상승했다. 단기간 내에 돈이 3배로 불어나니 돈 벌기 참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이 '초심자의 행운'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가가 오르자 그는 6개월 동안 부모님 등을 설득해 총 1억원의 자금을 모았고 전액 투자했다.

결과는 쓰라렸다. 한창 오르던 주가는 곤두박질쳐 투자원금 대비 30% 손실이 발생했다. 한 달 생활비로 20만원 정도를 쓰던 시절이라 그는 부모님 뵐 낯이 없어 친구들 집을 전전했다.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던 정 씨는 증권 커뮤니티에서 만난 한 지인의 말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를 떠올리던 정 씨는 "투자 초기였던 당시 현대상선에 대한 투자 결정은 직접했지만 내 판단보다 주변 사람들의 정보에 의존했던 게 컸다"며 "이 때의 경험이 바탕이 돼 나름의 투자 방식을 구축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정 씨의 지인은 해운중개업을 하던 사업가로 업계 내부 사정에 밝았다. 정 씨에게 물동량이 늘고 업황도 개선되고 있으니 주가도 곧 회복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의 말을 믿고 주식을 들고 버텼다. 서서히 회복되던 주가는 KCC 경영권 분쟁 이슈가 터지면서 급등하기 시작했고 정 씨는 9000원대에서 차익을 실현하고 빠져나왔다.

결과적으로 큰 이익을 보게 됐지만 정 씨의 마음은 찝찝했다. 그는 기업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회계 지식이 전혀 없었던 그는 이 때부터 기업 보고서들을 뒤져가며 필요한 지식들을 터득해 나갔다.

이후 한 두 종목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는 인터넷 검색과 기업탐방을 통한 투자 원칙들을 세웠다.

검색과 탐방은 웬만한 주식투자자라면 다하는 특별할 것도 없는 방법이지만 정 씨는 달랐다. 크라운제과의 경우처럼 당시 남들은 잘 들여다보지 않을 통계청 자료부터 시작해 외국 사이트의 자료들까지 닥치는 대로 조사했다. 탐방도 회사 한 두번 정도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들렸다.

"주식 투자하는 과정은 투자해야 하는 이유와 해서는 안 되는 이유들을 놓고 내 스스로를 설득하는 일이었다"며 "경험을 통해 단기든 중장기든 매매 타이밍을 잡는 것에는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유일한 무기는 투자 대상 기업을 잘 고르는 안목을 기르는 것뿐이었다"고 정 씨는 말했다.

◆'성장스토리' 갖춘 기업 찾기…수익구조와 지속성 관건

현재까지 정 씨가 가장 큰 수익을 얻은 종목은 세방전지와 아트라스BX다. 이 두 회사는 정 씨가 자신만의 투자 방식을 정립한 이후 발굴한 종목이다.

정 씨는 "이 두 회사의 2007년 4분기 실적을 보고 난 뒤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 결과에 호기심이 생겼다"며 "일주일 넘게 전국의 대리점을 찾아다니면서 실적개선의 이유를 직접 알아내려고 했다"고 지난 2008년 당시를 되짚었다.

그가 알아 낸 해답은 간단했다. 원재료인 아연 정강 가격 상승분을 제품가격에 전가한 것이 주 원인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경쟁사와 시장 상황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조사했다.

일본 배터리 시장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 회사는 납 생산을 줄이고 니켈 등의 생산을 늘려가는 추세였다. 또 당시 글로벌 1위업체인 존슨컨트롤스와 2위인 엑사이드 역시 인수합병(M&A) 부담과 정부 규제 탓에 납 생산능력을 늘릴 만한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국내 시장은 발품을 팔아서, 해외 시장은 현지 사이트 검색을 통해서 얻은 정보만으로도 세방전지와 아트라스BX의 수익구조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당시 가지고 있던 현금성 자산 12억원과 이를 이용한 레버리지 투자자금 50%를 모두 쏟아부었다.

아트라스BX와 세방전지는 매달 50억원가량의 매출을 늘려가던 시기임에도 시가총액은 각각 500억원, 800억원 수준이었다. 단기간에 주가가 아트라스BX는 6000원에서 1만8000원으로, 세방전지는 2만7000원선까지 뛰었다.

당시 모 저축은행에서 고유자산 운용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던 정 씨는 대학시절 현대상선에 투자했던 1억원이 48억원까지 늘어나자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의 단기 매매 차익 위주의 운용방식이 자신과 맞지 않기도 했지만 개인 투자에 좀 더 몰두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이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두 회사의 주가가 큰 폭으로 빠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익구조가 지속될 수 있는 사업 모델에 대해 궁리하게 됐다. B2B(기업 대 기업)보다 B2C(기업 대 소비자)의 수익구조를 갖춘 기업의 이익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최종 소비자를 상대하는 기업일수록 가격결정력이 높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그 무렵 가지고 있던 아트라스BX 정리하면서 크라운제과와 로만손 주식을 사들였다. 주력은 크라운제과였고 로만손에 대한 확신은 아직 부족한 상태였다. 크라운제과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시장과 브랜드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당 6만원부터 9만원대까지 총 2만8000주를 매수했다. 현재 크라운제과의 주가는 16만4000원(4일 종가 기준)이다.

현재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미래 수익구조와 연결된다는 판단도 이 때 생겼다는 게 정 씨의 말이다. 그는 "현재는 기업들이 갖고 있는 무형자산의 가치가 성장스토리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며 "경쟁사보다 효과적이고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기업이 가치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수퍼개미는 진화 중…"지금부터 3~5년 후를 지켜봐달라"

정 씨는 "지금까지 어디에 투자해 얼마나 벌었는지를 말하는 것보다 이 시점부터 3~5년 후에 결과를 한번 봤으면 한다"고 이번 인터뷰에 응한 속내를 내비쳤다.

로만손 지분 공시 등 일련의 과정들이 주목을 받게 되자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인터넷의 유명 증권커뮤니티의 몇몇 회원들은 정 씨를 두고 '주가를 부양한 뒤 떠넘기고 빠지려는 것 아니냐'고 비방했다.

그는 "로만손의 지분 신고는 사실 개인투자자로서 큰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며 "향후 세금 문제는 물론이고 차익을 실현할 때도 물량에 대한 부담이 생기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럼에도 좋은 기업이 시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고 이를 통해 수익까지 얻게 되는 일이 현재 나에겐 가장 즐거운 일이다"라며 "만약 몇년 후 결과가 좋게 나온다면 정말 다른 투자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이 있는 투자를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다른 개인투자자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너무 숫자나 단기 수익률을 쫓는 것보다 시간을 들여 회사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해보는 것이 더 큰 수익을 줄 수 있다"며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는 인터넷이나 회사 담당자를 통해 얻을 수 있고, 특히 회사 사업보고서에 첨부된 부가가치세 영수증을 통해서는 회사의 실제 수익구조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현재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정 씨는 방학 중 짬을 내 국내에 귀국한 상태다. 이번 학기를 마치기 위해 이달 중 중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한경닷컴 정형석 기자, 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