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기업 '패키지 자금조달' 앞장
금융회사들이 기업의 선제적 유동성 확보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다양한 금융기법을 종합적으로 활용한 '패키지 딜(package deal)'을 고안하고 자금조달의 전 과정을 지원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과거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고 기업을 압박하던 데서 한발 나아가 더욱 능동적인 형태로 역할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재무안정성이 떨어지는 그룹에 대해선 다수의 계열사를 끌어들인 자금조달을 주선함으로써 유동성 불안의 '뇌관'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확실한 금융환경에 대비하려는 기업들의 수요와 금융권의 신용분석 능력 향상이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두산 · STX · 금호에 유동성 지원

산업은행은 21일 두산그룹의 '밥캣' 인수 차입금 23억달러에 대한 리파이낸싱(채무 차환)을 조기에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번 리파이낸싱은 산은 주도로 공동대출(신디케이트론)과 보증채권 발행을 동시에 진행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산은 관계자는 "내년 11월에 몰려 있던 차입금 만기 집중에 대한 우려를 단숨에 해소했다"며 "앞으로 4~5년 동안 두산그룹에 유동성 위기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두산그룹은 지난 6월 신영증권의 제안으로 7200억원 규모의 자금조달 패키지 딜을 진행했다. 유상증자와 교환사채(EB),신주인수권부사채(BW),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한 '종합처방' 형태의 자금조달로 두산건설 유동성 부담 해소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 해운업황 악화로 선제적 현금 확보에 나선 STX그룹은 지난달 증권회사들과 패키지 자금조달 협상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STX조선해양은 4일 10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완료하고,현재 1000억원의 BW 발행 절차를 밟고 있다. 발행 주관은 모두 동양종금증권이 맡았다. STX그룹은 당초 다수의 계열사를 끌어들인 7500억원 규모의 자금조달을 협의했으나 추가 현금확보는 시장 상황을 지켜본 뒤 검토하기로 했다.

금호산업 채권단은 금호고속(100%),서울고속버스터미널(38.74%),대우건설(12.3%),경기고속도로(25%) 등을 한꺼번에 묶어 파는 패키지 딜에 대한 투자의향서(LOI) 제출을 18일 마감했다. 재무구조 개선을 서두르고 있는 금호산업의 자금조달 구조는 삼일PwC가 짰다. 금융권 관계자는 "삼일PwC가 과거 유찰 경험이 있는 서울고속터미널을 포함시켜 네 종류의 자산을 한꺼번에 팔자는 패키지 딜을 제안했고,금호그룹과 채권단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번 거래가 성사될 경우 금호산업은 1조원 정도의 현금을 손에 쥘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금융위기 학습효과 영향

이 같은 금융사들의 선제적이고 종합적인 자금 지원은 금융위기로 인한 학습효과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외화채권 발행을 담당했던 산은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거진 대기업들의 유동성 불안은 금융시장에 혼란을 가져왔다"며 "내년 시장 상황도 어렵다는 우려가 있어 두산그룹과 긴밀히 협의한 끝에 자금조달을 조기에 마무리짓게 됐다"고 말했다.

신용분석과 상품취급 역량 강화도 복합적이고 효과적인 자금조달을 가능하게 했다. 강성부 동양종금증권 채권분석팀장은 "과거에는 신용위험이 커진 그룹사의 자금조달을 진행할 때 계열사나 건별로 단순하게 접근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는데 지금은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특정 기업의 이슈를 그룹의 신용위험으로까지 확장해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태호/좌동욱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