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조 시장…투자제한ㆍ공시의무 없어 로비에 취약

KTB자산운용이 만든 사모펀드가 부산저축은행에 대규모 투자를 주선한 주체로 등장하면서 사모펀드의 운영 방식 등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대표는 부산저축은행에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포항공과대학교법인)이 1천억원을 투자하도록 주선했다.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과 광주일고 동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 과정에 학맥이 동원되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모펀드는 투자자와 투자비중 등의 공개 의무가 없어 로비 등에 태생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비밀유지 계약'으로 로비 개입 여지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와 달리 종목당 투자비중(10% 규칙)도 없고, 공시의무도 없다.

비공개로 투자자를 모집하고 자유롭게 운용한다.

운영 주체의 행보도 `비밀유지 계약'을 내세워 은밀하다.

로비가 끼어들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도 칼라일과 론스타는 미국 공화당, 뉴브리지캐피탈은 민주당 정권과 가깝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끼리끼리 하다 보니 학연, 지연으로 많이 얽힐 수밖에 없는 게 사모펀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장인환 KTB자산운용 대표는 광주일고 동문이 대주주인 부산저축은행에 의심스러운 투자를 하는 과정에 학연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혹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사모펀드는 고위험ㆍ고수익 투자대상이 생길 때 만들어진다.

이후 운용사는 사모펀드에 들어올 투자자를 물색한다.

은밀한 거래인 만큼 평소 잘 아는 사람이 주요 투자자이다.

2인 이상의 투자자만 있으면 사모펀드 조성이 가능하다.

공시 의무가 없으니 어디에 누가 얼마나 투자했는지 알 수 없다.

계약 내용은 당사자만 안다.

이 때문에 사모펀드에서 종종 사고가 발생했다.

대출한도 등으로 우방 인수자금이 부족했던 C&그룹이 2004년 우리 사모펀드에서 420억원을 투자받는 과정에서 로비 의혹이 일었다.

공연기획사가 사모펀드 운영자와 짜고 유명 공연물을 내세워 모은 자금 가운데 수백억 원을 빼돌려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힌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 시행 6년 사모펀드 `빛과 그늘'
지난달 토종 사모펀드 업계에 쾌거가 있었다.

미래에셋사모투자전문회사(PEF)가 휠라코리아와 컨소시엄을 이뤄 쟁쟁한 국외 PEF를 제치고 타이틀리스트라는 글로벌 1위 브랜드로 유명한 아큐시네트 인수에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2004년 12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기업인수 목적의 사모펀드인 PEF 6년 만에 한국 사모펀드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사모펀드는 매년 30~40개씩 늘어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사모펀드는 소수 고액투자자로부터 장기자금을 조달해 기업의 주식 등에 투자하고 투자대상 기업의 경영효율성ㆍ지배구조 개선 후 재매각을 통해 고수익을 추구한다.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국내에 등록한 PEF는 167개, 투자약정액은 28조9천억원이다.

사모펀드는 2004년 말 국내 도입 초기만 해도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의 미래에셋1호, 우리은행의 우리제1호 등 2개에 불과했다.

2007년 말 44개, 9조원에 비해 3년 만인 작년 말 PEF 수와 투자약정액이 각각 236%, 197% 급증했다.

그동안 국내 사모펀드는 크고 작은 성과를 냈다.

1호 사모펀드인 미래에셋1호는 법정관리 중이던 신우를 비롯해 미래에셋캐피탈, 성진지오텍 등 6개 기업에 투자해 144%의 수익률을 기록하고서 작년 5월 청산했다.

칸서스3호는 메디슨 지분을 인수했다가 삼성전자에 처분해 차익을 실현했다.

투자대상도 전통적인 국내 제조업체에서 벗어나 작년 말 외국기업으로 확대됐고, 투자처도 미국 등 선진국에서 중국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쌍용증권, 서울증권, 제일은행 등 국외 사모펀드가 인수해 정상화하고 나서 다른 회사에 팔아 엄청난 차익을 올리는 것을 바라만 보던 국내 사모펀드도 미약하지만,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다.

금융감독당국이 최근 규제 선진화에 나서 PEF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그러나 국내 토종 PEF가 세계적 기업 인수라는 `대박'을 터트린 지 한 달도 안 돼 사모펀드가 비리 수사에서 주목받게 됐다.

KTB자산운용이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에서 각각 500억원을 유치해 부산저축은행에 서둘러 투자한 것이 석연찮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유상증자에 91억원을 들여 참여한 아시아신탁은 1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이들 재단은 그런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아 한 푼의 배당금도 못 받은 채 원금까지 모두 잃고 말았다.

(서울연합뉴스) 곽세연 기자 ksye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