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일까.

현대그룹은 향후 우호지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사주 약 187만주(지분 1.3%)를 시간외 대량매매로 매도할 예정이라고 결정했다. 사실상 우호지분을 포기한 것이다. 그룹은 또 최근 실시한 유상증자 실권주도 기존 잔액인수 대상자가 아닌 제3자배정으로 처리했다.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현대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자기주식 187만1402주를 시간외대량매매로 매각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현대상선은 현금 약 695억원(12월24일 종가 기준)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현대상선의 이번 자사주 매각이 '경영권 방어'와 연결지어 해석될 수 있는 이유는 '처분기간'이 의결권 행사와 무관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오는 30일 증시 폐장일에 이 자사주를 제3자에게 넘길 예정이다.

자사주는 통상 주주총회에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이 없다. 그러나 경영권이 취약한 곳들은 회삿돈을 이용해 자사주를 자주 사들인다. 이 자사주를 향후 우호세력에게 매도할 경우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그러나 695억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12월 결산법인의 주주명부폐쇄 기준일(31일) 하루 전날인 30일에 매도할 계획이다. 이 경우엔 자사주 매입자가 내년 3월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한국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올해 마지막 거래일인 30일 결제가 완료돼야 실질주주명부에 등재되기 때문에 28일까지 주식을 매수해야 내년 정기주주총회 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상선은 사실상 우호지분을 포기했다는 얘기다.

현대상선은 이와 동시에 지난 23일과 24일 이틀간 실시한 주주배정 유상증자 이후 발생한 실권주 배정도 기존의 동양종합금융증권 등 잔액인수 대상자들이 아닌 대신증권 등 제3자에게 배정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현대그룹이 주주배정 유상증자 시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가가 불참, 우호지분이 더 이상 필요없는 것으로 보고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싼 제3자에게 실권주를 배정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이번 자사주 매각은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이므로 대상을 정해서 매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공정공시에 기재한 대로 유동성 확보를 위한 결정이라는 것 이외에 밝힐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