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환율 전쟁이 확전 일로다. 선진국과 신흥국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며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우리 정부의 의지와 관계없이 글로벌 환율 격전장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은행은 5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기존의 연 0.1%에서 0~0.1%로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4년3개월 만에 사실상 제로 금리에 다시 돌입한 것이다. 일본은행은 또 국채나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구입할 수 있는 5조엔(68조원) 규모의 '자산매입 기금'도 신설해 돈을 더 풀기로 했다. 벤 버냉키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로드아일랜드대 강연에서 "추가 자산매입이 금융시장 상황을 개선시킬 것으로 믿는다"고 말해 국채 추가매입 의지를 재확인했다.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면 해당국 통화가치는 떨어진다.

브라질 정부는 전날 브라질 채권에 투자하는 외화자금에 부과하는 금융거래세(IOF)를 기존 2%에서 4%로 전격 인상했다. 헤알화 통화가치 상승을 겨냥한 핫머니(투기성 자금) 유입을 막아 환율을 안정시키려는 조치다.
브라질 정부는 지난해 10월 헤알화의 지나친 가치 상승이 수출 경쟁력을 위협한다고 보고 헤알화 표시 채권과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 토빈세 성격의 IOF를 2% 부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헤알화 강세는 꺾이지 않았다. 헤알화 가치는 지난 주말 달러당 1.681헤알까지 치솟았다. 외환위기 직전인 2008년 9월3일(달러당 1.678헤알)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헤알화 가치는 지난 1월 말 연저점 대비 12% 상승했다.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최근 "모든 나라들이 자국 통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고 말해 IOF 인상을 예고한 적이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위안화 절상 압력을 받고 있는 중국은 환율조정 의사가 없음을 거듭 밝혔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전날 브뤼셀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 · 유럽 정상회의(ASEM) 개막 연설에서 "주요 통화의 환율을 상대적으로 안정되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해 위안화 절상 요구를 거부했다.

이처럼 환율전쟁이 격화되면서 새로운 통화협정이나 국제통화질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 420여개 은행과 금융기관을 대표하는 국제금융연합회(IIF)는 '제2의 플라자 합의'를 제안했다. 찰스 달라라 IIF 총재는 "전 세계 주요 경제국의 핵심그룹이 모여 새로운 환율협정을 도출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라라 총재는 달러 강세에 대응해 엔화가치를 절상시키기로 합의한 1985년 플라자 합의에 참여한 미국 관료 출신이다. G20 차기 의장국인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새로운 국제통화질서를 논의하기 위한 다자간 대화를 추진 중이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