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유럽도 중국에 대한 위안화 절상 압박에 본격 가세했다.

5일 AFP통신에 따르면 벨기에 브뤼셀의 아시아 · 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한 장 클로드 융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룩셈부르크 총리)은 "유로화 사용 16개국 재무장관들은 위안화가 전적으로(totally) 저평가됐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올리 렌 유럽연합(EU)집행위 경제 · 통화담당 집행위원과 함께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비공식 회담을 갖고 위안화의 빠른 절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융커 의장은 회동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 인민은행이 지난 6월 발표한 위안화 환율 유연성 확대 조치가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 막대한 무역흑자를 얻고 있다고 비판한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환율 유연성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후에도 위안화 절상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이후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2.15% 상승한 반면 유로화 대비로는 오히려 9.4% 절하됐다. ASEM 참석에 앞서 그리스 방문 때 원 총리가 "유로화의 안정을 지지한다. 유럽의 국채를 매각하지 않겠다"며 유럽에 화해제스처를 보였지만 유럽의 재무장관들은 위안화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유럽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융커 의장은 "이날 회담에서 우리(유로존)는 원 총리에게 위안화 절상을 요구했지만 중국 당국은 우리와 견해를 달리했다"고 전했다. 원 총리는 전날 열린 ASEM 개막식 연설에서도 "주요 통화의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함께 협력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위안화의 급격한 절상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나타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위안화 절상과 관련한 유럽과 중국의 대립은 미 · 중 갈등처럼 통상분쟁으로 비화될 전망이다. 원 총리는 "EU는 중국에 하루빨리 완전한 시장경제지위(MES)를 부여해야만 한다"고 요청했다. MES는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덤핑 수출을 규제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으로,EU와 미국 등 선진국들은 중국에 MES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위안화 저평가로 빚어진 양측 간 갈등 때문에 유럽은 이번에도 쉽사리 중국에 MES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편 AFP통신은 "EU 고위 관료들조차 자신들의 압력이 중국 정부의 결정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