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기자본에 비해 채무보증 규모가 과도하게 커진 상장사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를 사고 있는 건설사들을 비롯해 일부 코스닥 상장사들은 채무보증액이 자기자본의 10배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채무보증 기업은 주 채무자의 지급능력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신 빚을 갚아줘야 한다. 실제로 코스닥 정보기술(IT)부품업체 에스에이엠티는 채무보증을 서 준 홍콩법인에 문제가 발생해 880억원을 대신 떠안게 됐다. 보증액이 현금 유동성에 비해 지나치게 커지면 외환위기 때처럼 기업 존망이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에스에이엠티 보증액 880억원 떠안아

1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대규모 통화옵션상품(KIKO · 키코) 손실로 어려움을 겪었던 에스에이엠티는 홍콩법인 채무보증 건으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홍콩법인의 자금조달 과정에서 1500억원 안팎의 연대 보증을 섰다가 880억원을 대신 물어줘야 할 상황에 내몰렸다. 회사 관계자는 "키코 손실로 어려운 상황에서 홍콩법인은 금융위기 여파로 주요 구매기업에 문제가 발생했다"며 "홍콩 부실을 일부 본사로 이전해 채권단이 출자전환하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에스에이엠티처럼 문제가 터지진 않았지만 채무보증 금액이 많은 기업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PF 관련 보증이 많은 중소형 건설사가 특히 문제다. 풍림산업은 채무보증이 4조1500억원으로 자기자본의 15.1배에 달한다. 삼호 쌍용건설 한라건설 벽산건설 동양건설 두산건설 등도 채무보증이 자기자본보다 5~10배 많다.

금호아시아나계열인 금호타이어 금호산업의 채무보증비율은 각각 15.4배,6.9배에 이른다. 신성ENG 신성FA 등 신성그룹 계열사도 채무보증이 자기자본보다 7배가량 많다. 미리넷 유진기업 넥스트코드 등 일부 코스닥 기업들도 채무보증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채무보증이 급증한 상장사는 대우건설(1조6163억원) 한진중공업(1조3415억원) 한라건설(9621억원) 두산중공업(7100억원) GS건설(6060억원) 등이다. 한라건설 삼호 진흥기업 등은 올해 채무보증액만 작년 말 자기자본을 웃돈다.

해당 회사들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건설업체는 공사 관련 상호지급보증이 많은 업종 특성상 채무보증 금액이 크다는 것이다. 또 실질적인 대출이 아니라 우발적인 채무한도가 커짐에 따라 채무보증이 많아 보이는 착시효과도 발생한다고 해명했다.

◆"업종 평균 넘는 채무보증 문제 있어"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도한 채무보증의 위험을 과소평가해선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태식 한국공인회계사회 연구위원은 "채무 보증을 서주는 것은 경영진의 판단이지만 채권자나 투자자 입장에선 당연히 좋지 않은 결과"라며 "건설업은 시공을 맡으면서 지급보증을 많이 하지만 업종 평균을 넘어서는 채무보증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의석 신한금융투자 투자분석 담당 상무도 "기업의 존망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항인 만큼 현금유동성으로 커버할 수 없는 수준의 채무보증을 선 기업에 대해선 투자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과거에는 채무보증 한도를 정해 막았지만 이 규제가 없어져 채무보증의 위험성을 투자자 스스로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자기자본 10%(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이면 5%) 이상의 채무보증은 공시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금융 · 보험업 제외)은 원칙적으로 계열회사에 대한 채무보증을 할 수 없으나 국내 금융회사의 여신에 대해서만 해당된다. 이준택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연쇄부실을 막기 위한 조항이지만 해외 금융회사나 다른 제조업체로부터의 여신에 대해서는 채무보증을 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 채무보증액이 재무제표상에 부채로 더 많이 반영돼 재무구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박권추 금융감독원 회계제도실 팀장은 "예전에도 채무보증액을 평가해 재무제표에 반영했지만 IFRS 도입으로 반영비중이 더 높아지고 보증기관에 내는 수수료 만큼의 공정가치도 부채로 반영하게 됐다"며 "과거보다 채무보증액을 부채로 반영하는 액수가 커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진형/박민제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