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고액 자산가들의 '사모(私募)' 투자가 활발하다. 지지부진한 증시 대신 인플레이션을 헤지할 수 있는 대체 투자 수단으로 사모 ELS(주가연계증권)나 원자재 사모펀드 등에 주목하는 것이다.

15일 금융계에 따르면 강남 지역 증권사와 은행 PB(프라이빗 뱅킹)를 통해 고액 자산가들이 사모펀드를 결성한 뒤 ELS와 원자재 등에 투자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증권사들의 사모 ELS 발행액은 지난해 상반기 월 평균 3381억원에서 하반기 6909억원으로 2배 이상 커졌고 올 들어선 1월 8818억원,2월 8438억원으로 늘어 2008년 8월(1조2189억원) 이후 최고 수준이다.

고액 자산가들이 사모 ELS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증시가 부진해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공모가 아닌 사모로 투자하면 기초자산과 투자 시기를 '맞춤형'으로 선택할 수 있다.

원자재 투자도 인기다. KTB자산운용이 올해 선보인 곡물 사모펀드에는 1000억원이 몰렸다. 강남 부자들은 사모펀드를 만들어 최근 증권사들이 잇따라 선보이는 스팩(SPAC · 기업인수목적회사)과 해외 헤지펀드에까지 투자를 저울질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 25층 삼성증권 테헤란PB지점.한 골프모임 회원들이 사모 주가연계증권(ELS) 투자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래도 정보기술(IT)과 자동차에서 기초자산을 골라야 하지 않을까. " 지난해 삼성전자 현대차 등의 주식에 투자해 재미를 본 회원이 먼저 의견을 냈다. 이에 ELS 투자 경험이 많은 다른 회원이 "ELS는 주가가 많이 빠지지 않을 종목을 골라야 한다"며 "경기 사이클을 감안하면 원자재와 건설업종이 이 기준에 적합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토론 끝에 SK에너지와 GS건설을 기초자산으로 연 19.05% 수익률을 추구하는 30억원 규모의 사모 ELS가 결성됐다. 만기 2년에 4개월마다 조기상환 기회가 있는 이 상품엔 10여명의 투자자가 참여했다. 이 지점 류남현 부장은 "증시 박스권 장세가 이어지고,부동산도 시들한 상황이어서 큰 돈을 굴리는 개인 투자자들이 사모 투자 대상으로 ELS를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효용 씨티은행 반포래미안지점 PB팀장도 요즘 사모 ELS를 찾는 고액 자산가들의 전화를 많이 받는다. 정 팀장은 "올초부터 자산가들의 사모 ELS 투자가 두드러지게 늘었다"며 "글로벌 경기회복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판단으로 정기예금 이자의 세 배 정도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원금보장형 사모 ELS를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사모펀드를 통한 원자재 투자도 활발하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고액 자산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이라며 "주식으로는 인플레이션에 대비할 수 없다고 판단해 원자재에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특히 옥수수 밀 같은 곡물의 국제 가격은 아직 고점 대비 낮은 수준이라 수익을 올릴 기회가 많다는 분석이다.

부자들의 관심은 스팩(SPAC · 기업인수목적회사)과 헤지펀드에도 미치고 있다. 증권사들이 스팩을 잇따라 선보이자 여러 개 스팩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류 부장은 "스팩별로 유리한 매수와 매도 시점을 선택해 돈을 운용해 달라는 요구가 있다"고 전했다.

PB들이 고객을 대신해 자산운용사에 해외 헤지펀드 투자를 문의하기도 한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절대 수익률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의 매력에 관심을 갖는 부자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