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수 · 합병(M&A) 시장은 제도권 밖의 재야 고수들이 주름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는 M&A 중개회사인 '부티크'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토종' 1세대의 전성시대였지만, 2004년 말 사모투자펀드(PEF)가 허용된 것을 계기로 PEF 전문가들이 M&A의 주축으로 부상했다.

PEF는 대규모 자금을 끌어모아 기업 경영권을 인수한 뒤 기업가치를 높여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신종 M&A기법을 쓴다. 그런 만큼 이 방식에 익숙한 글로벌 투자은행(IB) 출신 등의 해외파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국내외 사정에 밝은 고위 경제관료 출신과 변호사 등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속속 가세하면서 M&A 시장을 이끌고 있다.

◆씨티출신 인맥 최강

PEF시장은 미국 씨티그룹과 하버드대 인맥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IB 출신들이 쥐락펴락하고 있다. 특히 씨티은행과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등 씨티 인맥은 최강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국내 최대 PEF인 MBK파트너스를 설립한 김병주 회장(46)이다. 김 회장은 2005년 세계적인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 부회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MBK파트너스를 만들었다. 그는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의 전신인 살로먼스미스바니에서 1995년부터 1999년까지 4년여간 몸 담으며 아시아지역 투자를 총괄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넷째 사위인 김 회장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 출신이기도 해 인맥이 탄탄하다는 평가다.

국내 첫 토종 PEF인 '보고펀드'를 출범시킨 이재우 공동대표도 씨티 출신이다. 그는 씨티은행에서 12년 동안 근무하다 미국계 PEF인 H&Q AP코리아 대표,리먼 브러더스 한국대표 등을 거친 금융 베테랑이다. 이 대표는 같은 씨티은행 출신인 민유성 산업은행장과 가까운 사이다. 2005년 이 대표가 리먼 브러더스 서울 대표를 그만둘 때 바통을 이어받은 인물이 민 행장이다.

하이스트 · 청산 · 푸른학원 등 전국 초대형 학원들의 지주회사인 타임교육홀딩스에 투자하고 있는 티스톤의 원준희 대표도 살로먼스미스바니 출신이다. 민유성 행장이 씨티은행을 거쳐 1999년 살로먼스미스바니환은증권(살로먼스미스바니의 전신)사장을 지냈을 당시 원 대표는 IB 담당 임원을 지내 관계가 두텁다.

이 밖에 이진용 신한프라이빗에쿼티(PE) 사장도 씨티은행 출신이다. 이들은 씨티은행 출신 금융인 모임인 '씨금회'를 통해 두세 달에 한 번씩 모이면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하버드대 인맥도 탄탄

글로벌 IB출신들이 주류인 만큼 유학파가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최고 엘리트를 표상하는 하버드대 인맥이 뜨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김병주 회장과 함께 MBK파트너스를 이끌고 있는 윤종하 사장도 하버드 출신이다. 케네디스쿨에서 석사를 받았다.

미국계인 H&Q AP코리아에는 유독 하버드대 출신이 많다. 고필재 · 이정진 공동대표가 각각 하버드 MBA를 나왔고 임유철 부사장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석사를 받았다.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 사장을 지냈던 박병무 변호사도 하버드 로스쿨 출신이다. 현재 친정인 법무법인 김앤장으로 복귀한 그는 여전히 M&A 전문가로 통한다. 1990년대 초반부터 M&A에 일찍 눈을 떠 쌍용증권 제일은행 등 수십 건의 거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아 뉴브릿지캐피탈코리아 대표로 영입되기도 했다.

이 밖에 르네상스PEF를 이끄는 김정식 웅진캐피탈 대표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사 출신이다. 얼마 전 오비맥주를 인수한 세계적인 사모펀드 KKR의 조셉 배 아시아 대표 역시 하버드대를 나왔다.

하버드대 출신들은 세계 PEF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는 평가다. 한 PEF 대표는 "매년 하버드대 MBA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의 10% 안팎이 전 세계 PEF 회사에 취업한다"며 "최고의 인재를 원하는 PEF업계가 월가보다도 2배가량 높은 임금을 지급하며 스카우트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경제관료 · 변호사 출신도 활발한 활동

고위 경제관료와 변호사 출신도 빼놓을 수 없는 인맥이다. 정부 사정에 밝은 경제관료와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는 글로벌 IB 출신들의 좋은 파트너가 되기 때문이다.

관료 출신으로는 옛 재정경제부에서 금융정책국장 금융정보분석원장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 변양호 보고펀드 공동대표가 대표적이다. 그는 PEF가 도입된 직후 토종펀드를 육성하겠다며 공직을 버리고 업계로 나왔다. 두산그룹 계열 PEF인 네오플럭스의 이종갑 사장도 재경부 출신이다. 2005년 재경부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낸 이 사장은 PEF 업계를 대변하는 PEF협의회 초대 회장도 맡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대변인 출신인 김영재 칸서스자산운용 회장도 PEF를 통해 메디슨 등을 인수하기도 했다.

변호사 인맥에서는 박병무 변호사를 비롯해 김앤장 출신들이 압도적이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사장과 이응진 전 스카이레이크 부사장이 이곳 출신 변호사다. 모건스탠리 서울지점 IB부문 대표를 지낸 신재하 보고펀드 공동대표도 한때 김앤장에서 미국 변호사로 일했다.

또 한일투신운용 사장을 지냈던 이정진 H&Q AP코리아 공동대표와 미국계 PEF 워버그핀커스의 황성진 서울사무소 대표도 미국 변호사 출신이다.

◆부상하는 토종 출신 금융인

최근엔 국내 기업과 금융권 출신 전문가들도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케이블방송 C&M 지분을 팔아 1조원대의 거액을 번 것으로 알려진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투자자를 유치해 M&A에 나서는 PEF와 달리 자체 자금을 굴린다. 지난주 미국의 석유개발 회사인 스터링에너지USA 주식 99%를 9000만달러에 인수,본격적인 투자에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이 회장이 지난해 에이티넘파트너스 사장으로 영입한 송승욱 전 미래에셋PEF 대표도 주목되는 인물이다. 송 사장은 LG그룹 M&A팀과 GS건설 등을 거친 토종 M&A 전문가다. 한국금융지주 계열 PEF인 코너스톤의 김석헌 대표도 송 사장과 함께 LG그룹 출신이다. 김 대표는 LG화학 M&A팀과 해외사업팀을 거친 뒤 씨티그룹에서 분리된 CVC(씨티벤처캐피탈) 아시아태평양 한국대표를 맡기도 했다.

홍콩계 PEF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한국 대표를 맡고 있는 박용택씨는 삼성전자 출신이다. 삼성전자 자금팀과 국제금융 미국법인 등에서 실력을 쌓았다. 2007년 하이마트를 유진그룹에 넘기면서 인수 2년 만에 1조원가량 차익을 남겼던 어피니티PEF는 지난달 더페이스샵을 LG생활건강에 매각하면서 투자원금의 5배를 넘는 수익을 올려 주목받고 있다.

산업은행 출신도 맹활약하고 있다. 송승욱 사장의 후임으로 미래에셋PEF를 이끌고 있는 유정헌 대표는 이 은행 투자금융본부 출신으로 올해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에 투자해 관심을 끌었다. M&A 주관 실적을 쌓고 있는 소시어스의 이병국 사장도 산업은행 M&A팀장 출신이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