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증권은 '증시 사관학교'로 통한다. 증권 업계에서 "대우증권 출신이면 얼굴도 안보고 뽑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수 두뇌들을 배출하는 정통 명가로 인정받고 있다. 1970년 동양증권을 시작으로 거의 40년 동안 간판 증권사로 입지를 다져 인재들이 많이 몰린 덕도 있지만,체계적이고 치밀한 도제식 사내 교육의 효과란 평가가 많다.

대우맨들은 증권 · 자산운용 · 투자자문사 등 금융투자 업계 전반에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이들 업체에서 현재 CEO(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는 인사만 13명이나 된다. 애널리스트들을 총지휘하는 리서치센터장도 대우출신이 8명에 달해 전체의 20%를 넘는다. 또 국내 및 외국계 자산운용 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본부장급 이상 고위 임원도 줄잡아 20명은 넘는다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국제부 출신 CEO 많아

대우 출신 CEO들의 특징은 국제부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황건호 금융투자협회장을 비롯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김기범 메리츠증권 사장,손복조 토러스투자증권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황 회장은 1984년 뉴욕사무소장으로 일할 당시 국내 최초의 외국인 전용펀드인 '코리아펀드(KF)'를 뉴욕증시에 상장시킨 주역이다. 외국인에게 증시가 개방됐던 1992년 전후엔 국제금융부장을 맡아 외국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주식중개 업무의 기틀을 마련했다. 초대 금융투자협회장을 맡게 된데는 이 같은 오랜 국제업무 경력이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2007년 한국투자증권 대표를 맡아 증권업계 최연소 CEO에 올라 업계에서 화제가 됐던 유상호 사장 역시 대우증권에서 런던법인 부사장까지 지낸 '국제통'이다. 유 사장은 메리츠증권 부사장으로 일할 때도 유럽계 자금을 대거 유치하는 등 유럽시장 사정에 밝다.

또 김기범 사장은 대우증권이 헝가리은행을 설립할 당시 실무 주역이었다. 이후 헝가리법인장과 런던법인장을 잇따라 맡아 해외 사정에 정통하다. 손복조 사장도 10년 넘게 도쿄사무소장으로 일하며 일본 투자자금을 국내로 들여오는데 기여했던 인물이다.

또한 박종수 전 우리투자증권 사장도 대우증권 헝가리은행장을 지내는 등 대우 국제부 인맥은 여의도 증권가를 주름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유신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사장,김해준 교보증권 사장,나효승 유진투자증권 사장 등은 IB(투자은행)영업과 자산관리영업부 등을 거친 대우맨들이다. 자산운용 업계에선 김호경(산은운용),최홍(ING운용),김석중(피닉스운용) 대표 등이 있으며 투자자문 업계에선 김일훈(스카이),이병익(오크우드) 대표가 활동하고 있다.

대우에서 오랫동안 국제업무와 리서치센터에서 근무했던 김석중 대표는 "가장 먼저 해외로 나갔던 증권사였던 만큼 일찍 거시적인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면서 "이는 외국인 비중이 높고 글로벌 증시가 같이 움직이는 지금같은 환경에 대처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강창희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투자교육연구소장),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을 지낸 이남우 메릴린치증권 전무,정영채 우리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 등도 대표적인 대우인맥이다.

◆스타 애널리스트 배출한 '리서치명가'

리서치 분야도 대우인맥의 파워가 두드러진다. 윤세욱(메리츠) 이종우(HMC) 이종승(NH) 임진균(IBK) 조용준(신영) 김승현(토러스) 조익재(하이) 신승용(애플투자) 등 주요 8개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들이 모두 대우 출신이다.

또 올 상반기 '한경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된 29명의 애널리스트 중에서도 대우에서 근무했거나 현재 근무 중인 인물이 9명이나 된다. 대우증권이 2004년부터 5년 연속 베스트 증권사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대우증권 특유의 도제식 교육시스템이 '리서치 명가'의 원천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그 뿌리는 1984년 국내 최초로 설립된 민간 경제연구소인 대우경제연구소(DERI)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서치센터의 전신 격인 이 연구소는 많은 우수 리서치 인력을 배출했다.

증권가에서 1세대 애널리스트로 꼽히는 신성호 우리투자증권 상품전략본부장(전무),지금은 법인영업 담당 상무로 자리를 옮긴 홍성국 전 센터장,전병서 한화증권 전 센터장,이종우 HMC투자증권 센터장 등 내로라하는 '스타 애널리스트'들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내공을 쌓았다.

백운목 대우증권 기업분석부장은 음식료업종에서 11년 연속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뽑혀 '지존'으로 불리지만,과거 도제식 교육을 받던 졸병시절엔 밤새워 만든 보고서가 '사수'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폐기처분되기 일쑤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애널리스트 초기 3년 정도까지는 데이터 가공 등 갖가지 잡일을 도맡아 하느라 힘겨웠다"며 "그만큼 도제식 교육이 워낙 엄격하고 가혹했지만 애널리스트로 빨리 자리잡을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