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펀드시장에서는 옛 '3투신' 중 하나인 한국투자신탁,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삼성생명이 3대 축을 형성하고 있다.

먼저 한투 출신들은 지금은 모두 사라진 3투신의 화려했던 영화를 입증하듯 곳곳에 폭넓게 포진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이곳 출신 펀드매니저의 좌장 격인 박종규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사장을 비롯해 운용사 사장만 7명에 이르고,최고투자책임자(CIO)와 주식운용본부장은 10명을 넘는다.

옛 동원증권의 인맥도 화려하다. 우리 자본시장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듣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대표적이다.

삼성생명 출신 역시 국내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은 물론 미래에셋자산운용과 함께 자산운용업계의 투톱을 형성하고 있는 삼성투신을 주름잡고 있다.

◆펀드매니저의 등용문,3투신

3투신이란 대한투신 한국투신 국민투신을 지칭하는 말로,1990년대 초반까지 증권시장을 주도하는 막강 파워를 과시하며 한국 자산운용업의 초석을 다졌다.

대투가 1970년 국내 최초의 투신사로 출범했지만 투신 업계는 1990년에 접어든 후에야 비로소 체계를 갖췄다.

스타 펀드매니저들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박종규 사장 때부터다. 당시 한투 주식운용부 주니어매니저였던 박 사장은 1993년 상반기 저PER(주가수익비율),저PBR(주가순자산비율) 주식을 끌어모아 자금을 굴린 지 47일 만에 20%의 목표수익을 달성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 그에게는 나중에 '드림 박'이라는 닉네임도 붙여졌다. 1997~1998년 한투 주식운용부가 업계 최고의 수익률을 달성하면서 사내에 '드림팀'으로 불린 데서 비롯된 것이다.

김석규 GS자산운용 사장,이윤규 사학연금 자금운용관리단장,장동헌 얼라이언스번스타인 사장,강신우 한국투신운용 부사장(CIO) 등도 한투 출신이다. 올해 자문업계에서 '대박'을 터뜨린 권남학 K1투자자문 사장을 비롯해 본부장만 해도 김영일(한국투신운용),오성식(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김기봉(유진자산운용),이형복(동양투신운용)씨 등 수두룩하다. 한투 출신이 운용업계의 두뇌로 자리잡은 셈이다.

대투 인맥으로는 올초 한국야쿠르트에 지분을 넘기고 업계를 떠난 김기환 전 플러스자산운용 사장,'프로이드 리'로 불린 이춘수 슈프림에셋투자자문 대표,한동직 동부자산운용 사장 등이 꼽힌다.

최재혁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사장도 대투에서 처음 근무를 시작했으며 올해 주식형 최고 수익률을 내고 있는 한상수 마이에셋자산운용본부장과 송이진 하이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도 이곳 출신이다.

국투 인맥으로는 이창훈 푸르덴셜자산운용 사장,유승록 하이운용 사장,이용호 메리츠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 등이 있다.

◆박현주 사단의 등장

1990년대 말 자산운용업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인물이 박현주 회장이다. 동원증권 주식부를 거쳐 강남지역본부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동원증권을 떠나 1997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했다. 1998년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박현주 시리즈'는 연간 100%가 넘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렸고 이를 계기로 박 회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박현주 시리즈는 실명 펀드의 효시로 꼽힌다.

박 회장을 비롯한 옛 동원증권 인맥도 탄탄하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1998~1999년 '바이코리아' 운용 시절 최단기 · 최다 스폿펀드(일정 목표수익률을 달성하면 자동 환매되는 펀드) 청산 기록을 갖고 있다.

이 밖에 구재상 미래에셋운용 사장,송상종 피데스투자자문 사장,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 등도 모두 동원증권 주식부 출신이다.

4조원이 넘는 규모의 인사이트펀드를 운용하는 구 사장은 같은 회사 손동식 부사장은 물론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정상기 미래에셋맵스 자산운용 사장 등과 함께 증시에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는 '박현주 사단'으로 불린다.

선물투자로 거액을 벌어 코스닥 의류업체인 '좋은 사람들'을 인수한 선경래 지앤지인베스트 대표도 첫 직장은 동원증권이었다. 장인환 사장은 "증권사 주식부는 장이 안 좋다고 보면 주식을 사지 말든지 선물을 매도하든지 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증권사 출신 펀드매니저들은 자산운용에 적극적이고 매매도 다소 공격적인 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은 연기금의 주축

삼성생명도 펀드매니저의 오랜 산실이다. 1980년대 후반 당시 동방생명이었던 삼성생명은 공격적인 주식투자로 교보생명을 제치고 1위 생명보험사로 도약해 1990년대 3투신과 함께 국내 간판 기관투자가로 부상했다. 한때 보유한 주식이 전체 증시 시가총액의 3%에 달할 정도로 증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삼성생명은 2000년대 초반 삼성투신운용에 주식 투자업무를 맡기기 시작해 이제는 주식에 직접 투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증시 큰손 시절 배출했던 인재들이 시장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강력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당장 국내 최대 기관인 국민연금에 이 회사 출신들이 많다.

투자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김선정 본부장은 삼성생명 증권부장을 역임했고,기금운용본부의 장재하 주식팀장도 삼성생명과 삼성투신운용에서 투자업무를 익혔다.

주식팀장이란 국민연금 전체 주식투자 금액의 절반 정도인 17조원을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막강 파워를 가진 자리다. 하영호 리스크관리실장도 삼성생명에서 국내투자파트장을 지냈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임원은 "내년에 국민연금이 주식투자 규모를 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들의 행보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또 공무원연금의 정경수 본부장도 삼성생명에서 주식 관련 임원을 맡았다. 자산운용사 CIO 가운데 삼성생명 출신은 허장 푸르덴셜운용 주식운용본부장과 양정원 삼성투신 주식운용총괄본부장 등이 꼽힌다. 양 본부장은 삼성투신에서 삼성생명 출신 1호 CIO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