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전환을 추진 중인 한진해운이 돌연 자사주를 대거 처분했다. 주식을 넘겨 받은 곳은 사모펀드(PEF)다. 증권업계에서는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시아주버니 조양호 회장이 이끌고 있는 한진그룹으로부터 벗어나 계열분리를 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자사주가 PEF로 매각되면서 의결권(3.62%)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전환 앞두고 자사주 처분

한진해운은 지난 20일 자사주 320만주(지분 3.62%)를 시간외 대량매매로 처분했다고 24일 밝혔다. 매매금액은 20일 종가(1만8750원) 기준으로 600억원에 이른다. 이 지분은 오는 30일 신탁 만기인 자사주로, 장기투자 성격의 PEF에 인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의 이번 자사주 매각이 시장에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한진그룹의 지주사 전환을 눈앞에 두고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한진해운홀딩스(존속법인)와 한진해운(신설법인)으로 회사를 분할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분할로 인해 오는 27일 주권 매매거래는 정지되고, 다음달 29일 한진해운홀딩스와 한진해운은 각각 0.16대 0.83의 비율로 회사가 분할된다.

한진해운은 1398만3875주(지분율 15.82%, 9월말 기준)의 자사주를 보유중이다. 회사가 분할하면 한진해운홀딩스와 한진해운이 각각 자사주 15.82%를 갖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 최 회장이 320만주의 자사주를 매각하면서 한진해운홀딩스와 한진해운이 갖게 되는 자사주 지분은 12.2%로 낮아지게 됐다.

단순한 자금확보냐? 우호지분 마련 위한 포석이냐?

지주회사법상 지주사 전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선 지주사가 사업회사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만 한다. 부족한 지분은 분할 상장 이후 2년 이내에 장내에서 사든, 신주를 발행해서 사업회사 주주들의 지분과 맞바꾸든 해서 채워 넣어야 한다. 따라서 자사주를 많이 갖고 있는 게 한진해운 입장에선 도움이 될 법하다.

이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주사 전환을 꾀하는 기업은 적대적 M&A(인수ㆍ합병)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에 여간해선 자사주를 팔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쪼개지면 그만큼 덩치가 작아져 기업사냥꾼들로부터 M&A 위협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진해운 독립경영 앞당겨지나?

한진해운은 2006년 고(故) 조수호 회장(창업주 조중훈 회장의 3남)이 유명을 달리한 이후 그의 부인 최은영 회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최 회장은 두 딸 함께 한진해운 지분 5.5%를 상속받아 보유중이다. 여기에 재단법인 양현 등 우호지분까지 합하면 최 회장측 지분은 12%대로 올라간다.

고 조 회장의 형인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5.53%)과 한국공항(3.53%) 등을 통해 한진해운 지분 약 10%를 확보한 상태다. 한진해운은 장기적으로 그룹에서 벗어나 독립경영을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경영을 하겠다는 한진해운의 의지와 이번 자사주 매각이 무관치 않다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 회장이 자사주를 사모펀드에 매각했는데 이를 통해 최 회장측 우호지분이 늘어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사주를 '백기사'에게 넘겨 의결권을 살린 뒤 이를 우호지분으로 삼아 지분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운업종 분석을 맡고 있는 한 애널리스트도 "민감한 시기에 자사주를 돌연 매각해 의결권 없는 자사주의 의결권을 살린 것은 단순한 자금확보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진해운 측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번 자사주 매각은 한진그룹이 채권단과 최근 맺은 재무구조 개선 약정에 포함되어 있어 이를 이행한 것일 뿐"이라며 "대주주를 둘러싼 시장의 루머는 근거 없는 억측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한경닷컴 정현영/안재광 기자 ahn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