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분적으로 맞지만 부분적으로는 틀린 얘기입니다.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차단하는 효과가 분명 있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부동산이나 주식을 살 때의 이자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에 자산가격 상승에 제동을 걸 수 있습니다. 자산가격이 안정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억제됩니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을 격퇴하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펴 물가를 안정시켰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과거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던 나라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금리가 매우 높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980년대와 90년대 상습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남미 국가들에선 연 금리가 두 자릿수 또는 세 자릿수를 기록한 적이 많았습니다. 한국의 경제개발 역사를 둘러봐도 인플레이션이 만연했을 때의 금리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이자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일본에서 인플레이션 거품이 발생하기는커녕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이 더 큰 문제가 됐습니다.

고금리 정책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차단하고 물가를 안정시킬 것인지,아니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쪽으로 갈 것인지는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정부의 재정정책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정부가 세금 수입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하고,채권을 발행해 돈을 조달하거나 중앙은행에서 화폐를 찍어낸다면 정책금리를 올려도 인플레이션이 확산될 수 있습니다. 시중 통화량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재정'의 문제가 '금리'보다 인플레이션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은 오는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 예정입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편성한 대규모 적자예산으로 인해 시중 자금이 넘치고 있습니다. 재정 부문에서 '출구전략'을 쓰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만으로 시중 유동성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출구전략 국제 공조를 논하기에 앞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정책 공조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욱 시급해 보입니다.

현승윤 금융팀장 n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