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황건호 금융투자협회장)

"전 세계 펀드 시장은 라이프사이클(생애주기) 펀드처럼 자산 배분이 가미된 상품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피터 드 프로프트 국제자산운용협회(IIFA) 회장)

지난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렸던 국제자산운용협회 연차총회에 참석한 세계 30여개국 자산운용협회장들은 한 목소리로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펀드도 자신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짜서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07년 말 26조달러를 넘던 세계 펀드순자산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지난 1분기 말엔 18조달러로 8조달러(약 9조6000억원)나 급감했다. 채권형이나 혼합형펀드 투자자는 이번 충격을 다소나마 비켜갈 수 있었을 테지만 자산의 대부분을 주식형에 몰아넣었던 투자자는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금융위기 이후 펀드시장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분산투자하는 펀드 문화의 정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펀드도 '쏠림투자'피해야

2007년 말 3000만원의 목돈을 손에 쥔 회사원 김모씨와 박모씨(이상 39세)는 회사 근처에 있는 증권사에서 비과세 혜택으로 인기를 끌던 해외 주식형펀드에 가입했다. 김씨는 영업 직원의 조언을 듣고 러시아를 비롯한 브릭스 4개국에 투자하는 브릭스펀드를,박씨는 러시아에만 투자하는 러시아펀드를 선택했다. 2년 정도된 지금 김씨의 펀드 평가액은 2150만원(-28%), 박씨는 1286만원(-57%)으로 줄었다.

러시아펀드는 올 들어서만 100%가 넘는 수익을 내고 있지만, 2년 전체로는 4개국에 나눠 투자하는 브릭스펀드보다 손실폭이 두 배나 된다. 특정지역에 '몰빵' 투자할 경우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펀드평가 업체인 제로인에 따르면 펀드 투자자 10명 중 7명은 4개 이상의 펀드에 가입하고 있다. 가입 펀드 수가 늘어난 만큼 증권사나 은행 영업 직원의 말만 믿고 무턱대고 가입할 게 아니라, 자신의 투자 목적과 기간 등을 감안,분산투자를 통해 위험을 관리하는 일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유지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연구위원은 "한 두가지 음식만 계속 먹으면 영양상태가 불균형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으로 건강한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투자자산을 균형있게 배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라고 말했다.

◆리스크 관리는 자산분산부터


위험을 줄이기 위한 포트폴리오 투자의 방법으로 △자산 분산 △투자시점 분산 △지역 분산 △스타일 분산 등이 있다.

먼저 자산 분산이란 투자 대상을 주식,채권,금 등의 대안투자,유동성자산 등으로 다양하게 나누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식은 높은 수익을 안겨다 주지만 자칫 큰 손실을 볼 수 있으므로 자신의 나이와 투자 성향에 맞게 비중을 조절할 것을 조언한다. 기본적으로는 나이가 들수록 채권형펀드 투자 비중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라이프사이클펀드'는 자산 분산을 실천하는 대표적 상품 중 하나다. 라이프사이클펀드란 젊은 연령에서는 주식 비중을 높여 공격적으로 자산을 굴리다가 은퇴 연령이 다가올수록 주식을 줄이고 채권 비중을 높이는 보수적인 전략으로 바꿔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리는 상품이다.

실제 미국의 대표적인 퇴직연금 제도인 401(k)플랜에 신규 가입한 근로자의 60%는 지난해 라이프사이클펀드를 중심으로 한 혼합형펀드에 가입했다.

투자시점 분산은 자칫 주가 '꼭지'에서 투자하게 되는 리스크를 줄여주는 방법이다. 적립식펀드가 이를 활용한 대표적인 상품이다. 또 지역 분산은 세계 주식시장내 비중이 2%에 불과한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펀드 외에 해외 펀드에도 가입해 98%의 투자기회를 얻으면서 국내에만 투자할 때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펀드 리모델링' 꾸준하게 해야

올 들어 주식형펀드(ETF 제외)에서 7조4000억원이 순유출됐다. 글로벌 증시가 오르면서 원금을 회복했거나 차익을 올린 데 따라 환매가 잇따른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펀드 수익률이 환매의 이유가 돼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펀드 해지는 투자한 자산의 전망이나 자금 소요 계획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환매한 후에도 단순히 CMA(종합자산관리계좌)나 MMF(머니마켓펀드) 등 단기상품에 자금을 넣어 주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갈아탈 대상을 미리 정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오대정 대우증권 WM리서치팀장은 "증시 상승으로 자신의 금융자산에서 위험자산인 주식의 비중이 목표보다 높아질 경우 초과된 부분을 환매해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자산 리모델링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팀장은 주식 비중을 적게는 50%,많게는 70%까지 높일 것을 권했다. 또 주식은 6 대 4 내지는 7 대 3 정도로 국내 비중을 확대하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해외 펀드의 비과세 혜택이 올해 말로 끝나 세후수익률에서 국내보다 못할 수 있는 데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실적 개선폭이 크기 때문이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