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을 앞 둔 기업들이 부진한 주가 탓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합병을 하려면 이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을 회사가 사줘야 하는데, 주가가 떨어질수록 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일부 회사는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2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호남석유화학과 케이피케미칼의 합병은 무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기존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회사에 주식을 되사줄 것을 요구하는 권리)을 행사할 가능성이 더욱 커져서다.

호남석유와 케이피케미칼의 주식매수청구가는 각각 9만3883원과 8264원. 이에 비해 현 주가(28일 종가)는 8만5000원과 7050원으로 주식매수청구가보다 각각 10.4%와 17.2% 낮게 형성되어 있다.

호남석유 지분을 보유한 기관 중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곳은 우리자산운용, 푸르덴셜자산운용, 칸서스자산운용 등 10곳이 넘는다. 신한BNP파리바 등 케이피케미칼 주주들도 반대가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 합병에 반대하는 소액주주들까지 더하면 합병비용으로 회사측이 제시한 2000억원은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주식매수청구 기간 종료가 얼마 안 남았는데도 경영진이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한 뚜렷한 방안을 못 내놓고 있다"며 합병 무산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주식매수청구는 다음달 12일까지 가능하다.

더존비즈온 더존디지털웨어 더존다스 등 세 회사의 합병을 추진 중인 더존 그룹도 사정이 비슷하다. 더존디지털웨어의 현 주가는 6810원으로 주식매수청구가(7195원)보다 낮다.

회사측은 합병 비용을 줄여보기 위해 이달 중순 매년 영업이익이 200억원씩 늘 것이라는 긍정적 실적 전망을 발표했지만, 발표 당일 하루만 주가가 반짝 했을 뿐 이후 다시 하락세다.

더구나 더존 그룹은 합병비율을 지나치게 대주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산정했다는 논란도 있다. 이때문에 더존디지털웨어의 지분 2.06%를 보유한 에셋플러스자산 등 기관투자자 몇 곳은 합병 반대 의사까지 표시했다.

서울지류유통과의 합병을 추진중인 한솔PNS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현 주가(28일 종가 1490원)와 주식매수청구가(1434원)의 차이가 크지 않아서다. 회사측이 합병비용으로 60억원을 못박고 있어 주식매수청구 기간인 내달 11일까지 주가 추이에 따라 합병 성공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또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합병을 추진중인 회사는 합병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자사주를 사서 주가를 방어하고 주주들에게도 신뢰를 얻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합병을 추진중인 기업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 ahn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