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일부 주가연계증권(ELS)의 조기 상환이 무산된 데 대해 해당 상품을 판매 · 운용한 국내 대형 증권사 세 곳이 기초자산인 편입 종목의 시세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 증권사들을 제재키로 해 주목된다.

지난 5월 캐나다의 대형 은행이 ELS 만기일에 기초자산 종목의 주가를 고의로 낮춰 수익률을 떨어뜨린 혐의가 적발돼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과 비슷한 유형이다. 이 같은 사례로 국내 증권사들이 거래소의 제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이번에는 "고의가 아니다"는 국내 증권사들의 소명을 거래소 측이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처벌 수위를 당초보다 낮출 것으로 알려져 제재금 등을 정할 21일 시장감시위원회의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LS를 운용하는 증권사 입장에선 조기 상환이 무산되면 그동안 제대로 헤지를 하지 못 했을 경우 생길 손실을 떠안지 않아도 된다. ELS는 코스피 200지수나 개별 종목의 주가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으로, 조기상환일과 만기일에 주가가 일정한 수준 이상을 유지하면 약속된 수익을 지급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ELS에 대한 전면 실태조사 결과,국내 대형 증권사 세 곳이 해당 ELS의 조기상환 예정일에 기초자산인 종목에 대해 대량 매물을 내놓아 투자자들의 조기 상환 기회가 무산된 사실을 발견했다.

거래소는 '징계 등 사전동의서'를 해당 증권사에 보내 해명을 듣고 있다. 거래소는 일단 주가 관여 혐의가 큰 A사와 B사에는 1억원 이하의 제재금을 부과하고 C사는 경고 조치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가 문제삼고 있는 대목은 3개 ELS의 기초자산 종목의 주가가 각각 조기상환 예정일에 장중 가격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조기 상환될 수 있었지만 증권사들의 대량 매물로 주가가 하락해 상환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A사가 작년 4월 발행한 ELS는 두 번째 조기상환일인 올 4월15일 기초자산 중 하나인 S종목의 종가가 9만6000원을 넘으면 연 24%의 수익을 지급하는 구조였다. 이 종목은 이날 장중 9만9300원까지 오름세를 유지했지만 A사 ELS운용팀에서 오전 11시부터 마감 시간인 오후 3시까지 모두 140억원어치의 매물을 쏟아낸 탓에 주가가 하락세로 전환,9만5900원으로 끝났다. 이에 따라 이 ELS 투자자들은 연 24%의 수익을 얻을 조기 상환 기회를 날렸다는 것이다.

또 B사가 2005년 3월 발행한 ELS의 경우 두 번째 조기상환일인 같은 해 11월16일 기초자산인 또 다른 S사의 주가가 마감 직전까지도 조기 상환 요건을 충족하는 수준(10만8500원)보다 높은 10만9000원을 유지하고 있었지만,B사가 9만여주를 팔아 결국 10만8000원으로 떨어졌다.

A사와 C사의 해당 ELS는 조기 상환 기회가 날아간 이후 지금까지 조기 상환의 기회를 맞지 못한 채 운용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해당 증권사가 매도 물량을 쏟아낸 탓에 수익을 놓치고 앞으로 주가가 하락할 경우 원금 손실의 우려까지 안게 된 셈이다.

이들 ELS의 규모는 모두 100억원 미만으로 크진 않지만 이 정도 규모도 한꺼번에 매도 물량으로 쏟아지면 충분히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A사의 경우 ELS가 모은 자금은 80억원이지만 문제가 된 S종목의 조기상환 예정일 당일의 매도 물량만 140억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거래소측은 책임을 더 물어 가장 많은 제재금을 부과키로 한 상태다.

하지만 증권사들이 ELS의 조기상환일이나 만기일에 보유주식을 못팔게 하는 규정은 없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조기상환일과 만기일에 수익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증권사들이 ELS 기초자산의 시세를 조종한다는 의혹이 많았다"며 "이번에 이 같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증권사들은 물론 ELS 상품에 대한 신뢰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 ELS 수익률 관리 어떻길래…

만기일에 보유株 정리…오해 소지

한국거래소로부터 주가연계증권(ELS) 기초자산 종목의 시세 관여 혐의를 받고 있는 대형 증권사들은 상품 특성상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투자자에게 보장한 수익을 지급하려면 조기상환일과 만기일에 현금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일에 보유 주식을 모두 정리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C증권사 파생트레이딩팀 관계자는 "ELS가 조기 상환되면 투자자에게 약속한 수익을 지급해야 하므로 들고 있는 관련 종목의 주식을 모두 팔아 현금화해야 한다"며 "더욱이 증권사로선 주식 정리가격이 당일 종가와 비슷할수록 손실을 줄일 수 있어 마감 때 물량을 대거 정리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한 증권사가 수십개의 ELS를 발행하다 보니 기초자산이 겹쳐 관련 주식의 시세에 끼치는 영향력이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S종목을 마감 때 90억원가량 매도해 ELS의 조기 상환 기회를 무산시킨 B증권사의 경우 이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만 16개가 더 있다. 이 때문에 이 증권사는 "통상적인 매매였을 뿐 고의적인 시세 조종은 아니다"고 해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