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토론.익명게시판.패밀리데이…소통.처우개선 노력

새로 취임한 국내 증권사 CEO(최고경영자)들이 과거의 권위적인 모습에서 탈피해 직원 중심의 새 기업문화 개선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은 취임 직후 `끝장토론', `익명게시판과 CEO스피드 데스크', `이메일경영',`휴가기간 일간 영업약정 제외', `패밀리데이' 등 새로운 제도들을 쏟아내며 처우개선 노력, 소통채널 마련 등을 통해 직원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2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 취임한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사업부별로 돌아가면서 직원들과 '끝장토론'을 벌이고 있다.

취임 한 달이 안 된 현재까지 WM(자산관리)사업부와 에퀴티(Equity)사업부 등과 만나 부서별 사업모델, 핵심역량과 성공 요인에 대한 현장 직원들의 생각과 판단을 확인했다.

토론을 통해 사업전략까지 마련하다보니 회의가 자정까지 이어지기가 일쑤이지만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토론을 통해 이상과 비전을 공유할 수 있어 직원들의 호응이 높다고 회사측은 전했다.

이달 초 취임한 임기영 대우증권 사장은 지난 17일 직원들의 근무 여건 개선을 위해 의무휴가사용제와 근무시간 준수안을 발표해 직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임 사장은 공문을 통해 영업직원이 휴가를 마음대로 쓰기 어려운 가장 큰 요인인 일간 영업약정을 휴가 기간에는 제외하도록 하고 아래 직원들이 눈치를 보지 않도록 부서장이 먼저 휴가를 떠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올해 여름에는 장기간 휴가를 가기 어려웠던 영업직을 포함한 전 직원이 5일 이상 연속으로 휴가를 떠날 수 있을 전망이다.

또 리서치센터나 전산 등 일부 부서를 제외한 직원들이 근무시간을 준수할 수 있도록 퇴근 이후 회의나 교육을 자제하도록 지시하고,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을 '패밀리데이'로 지정, 전 직원이 오후 5시에 무조건 퇴근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도록 해 직원 가족들로부터의 호응도 뜨겁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이형승 IBK투자증권 사장은 회사 내부 게시판을 활용해 직원들의 민원 해결자로 나섰다.

이 사장은 회사 인트라넷에 'CEO 스피드 데스크'라는 제목의 익명게시판을 개설하고 직원들에게 회사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와 애로사항 등을 게시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의견을 게시하면 24시간 내 해당 부서에서 관련 내용을 검토해 답변하도록 한 덕에 게시판 운영 열흘 만에 이미 교육이나 복리후생 문의, 동호회, 체육대회와 같은 이벤트 제안 등 70건 이상 올라왔다.

이번 달로 취임 1년을 맞는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이메일 경영'으로 직원들과 소통한다.

직급에 관계없이 격의 없는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박 사장은 취임 후 사내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내 이메일은 항상 열려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박 사장은 책상에 이메일을 확인하기 위한 모니터를 별도로 두고 있고, 회사 밖에서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회사 결제도 이메일로 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이로 인해 보고서 외에 직원들로부터 개인적인 내용의 이메일을 하루 수십통씩 받고 있다.

과거 권위를 앞세우던 CEO와 달리 직원 중심의 기업문화 개선에 나선 신임 CEO에 대해 증권사 직원들은 신기하면서도 이러한 변화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직원은 "보수적인 증권가에서, 게다가 최고위직인 CEO들이 아래 직원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는 모습이 신기하다"며 "CEO의 변모된 모습에 직원들도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업무에 임하게 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luc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