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경기상황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던 올해 초 연간 단위 사업계획 수립을 포기하고 '시나리오 경영'에 들어간 A그룹.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지만 아직도 정상적인 경영계획을 짜지 못하고 있다. 경기회복을 피부로 느낄 수 없는데다 환율 유가 등 대외 변수가 어느 방향으로 튈지도 가늠하기 어려워서다. A그룹 관계자는 "상반기에는 원 · 달러 환율이 높았던 덕에 그나마 수지를 맞출 수 있었지만 하반기에는 환율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며 "외려 하반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저성장 장기화에 대비해야"

경기 회복 전망이 잇따르고 있음에도 불구,위기상황에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주요 기업들의 '패스트 트랙(신속 대처)' 경영 기조는 거의 바뀌지 않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6~7월께 일제히 경영전략 회의를 갖고 구체적인 하반기 대응방침을 마련할 계획이다.

삼성은 저성장 기조가 오래 갈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사업계획을 운영하고 있다.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은 지난 3일 삼성 사장단협의회에 참석해 "주가 환율 등 금융지표가 부분적으로 개선되더라도 위기의 본질이 해소될 때까지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 언제든 기업 부실 문제가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있고 이는 금융회사 부실로 이어져 회복 기조 자체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 1일 호암상 시상식에서 "경기가 점차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가 있지만 아직 긴장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오는 7월 하반기 경영전략을 논의하기 위한 해외 지 · 법인장 회의를 열 예정이다. 환율 하락과 원자재값 상승 등 불안요소가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올해 경영 목표를 재점검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올해 초 조직개편과 함께 시작한 사업구조 정리 작업에 속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대 · 기아자동차는 상반기와 마찬가지로 분기별 · 월별로 사업계획을 손보는 체제를 유지할 방침이다. 자동차 시장의 수요 회복 여부가 불투명해서다. 지난 5월 현대차의 생산량은 11만646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1% 줄어든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GM이 파산보호 신청을 하는 등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구조조정과 이합집산이 한창이어서 중 ·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쉽지 않다"며 "6~7월 중 개최될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하반기 국내외 시장 전망과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율과 원자재시세가 새 복병

LG는 이달 중 구본무 그룹 회장이 직접 주재하는 '컨센서스 미팅'을 통해 구체적인 계열사별 하반기 전략을 조율할 계획이지만 '하반기에도 비상체제를 유지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LG전자는 월별 사업계획 체제를 유지하고 연간 3조원의 비용을 줄이는 프로젝트를 하반기에도 지속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환율 효과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수익성과 시장점유율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하라는 게 남용 부회장의 지침"이라며 "상반기보다 높은 강도의 '혁신 캠페인'이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SK 역시 상반기부터 실시해온 1~2개월 단위의 초단기 경영방식인 '시나리오 플래닝'을 하반기에도 계속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 SK CEO들은 매달 열리는 '수펙스추구협의회'에 국내외 경제 · 경영 전문가들을 초청,세계 경제 흐름을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LS전선은 원자재값이 오르고 경기회복 속도도 둔화될 것으로 보고 올 하반기 투자를 300억~400억원 규모로 낮춰 잡았다.

◆포스코,감산 폭 줄여

경기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곳도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매달 30만t가량 생산량을 줄였던 포스코는 하반기부터 감산 폭을 줄일 계획이다. 2분기 중 바닥을 다지고 3분기부터 시황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서다. 포스코 관계자는 "현재 5~10%인 영업이익률이 하반기부터 예년 수준인 15~20%로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상황이 조금씩 나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원 · 달러 환율과 유가가 연초에 예상했던 1200원대와 75달러 선에 근접하고 있다"며 "비상 대책을 수립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고 전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