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들의 현금성 자산이 최근 6개월 사이 10조원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차입과 증자에 잇따라 나선 반면 경기 악화로 투자를 줄인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기업의 현금자산은 늘고 있지만 수익성 악화로 이자보상배율은 지난해에 비해 낮아졌다.

20일 금융감독원과 한국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사 전체의 현금성 자산 합계는 올 1분기 말 현재 95조815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3분기 말(85조5170억원)보다 9조56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작년 말(87조3006억원)에 비해서도 7조7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현금성 자산은 현금 수표 당좌예금 등 현금에 준하는 자산과 1년 미만의 단기금융상품을 합한 것이다.

지난 3월 말 현재 10대그룹 계열 80개사의 현금성 자산 합계는 47조1000억원으로 작년 말에 비해 3조1000억원 증가했다. 그룹별로는 5개 상장사를 보유한 포스코가 작년 말 2조5000억원에서 1분기 말 4조1000억원으로 늘어 증가액이 가장 많았다. LG도 올 들어 9000억원 증가했고 GS(7000억원) SK(3000억원)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개별 회사 중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포스코로 작년 말 2조4663억원에서 올해 3월 말 3조9893억원으로 3개월 새 1조5223억원(61%) 급증했다. GS건설두산중공업도 올 들어 현금성 자산이 5000억원 이상 늘었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작년 4분기 기업의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현금성 자산이 줄었으나 올해 들어 최악의 상황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차입이나 증자에 주력한 반면 투자는 줄여 현금성 자산이 다시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반면 현금성 자산이 줄어든 경우도 있다.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은 1분기 말 4조7250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1조원 가까이 감소했다. 작년 9월 말과 비교하면 2조3000억원 이상 줄어든 규모다.

주요 조선업체들의 현금성 자산 감소도 두드러졌다. 삼성중공업은 작년 말 2조883억원에서 3월 말 6125억원으로 1조5000억원 가까이 급감했고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도 올 들어 각각 30% 가까이 줄었다. 이종환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조선사의 현금성 자산은 대부분 선수금으로 이뤄지는데 올 들어 신규 수주가 부진한 탓에 현금성 자산이 크게 줄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말 현재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은 기업은 여전히 삼성전자로 4조7250억원을 기록했고 현대자동차(4조6967억원) 포스코(3조9893억원) LG디스플레이(3조4576억원) 등의 순이었다.

기업의 현금자산은 늘었지만 금융비용 지불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3월 말 현재 상장사 중 이자보상배율이 1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은 650개사로 전체의 45%에 달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의 비율은 지난해 3분기 37%에서 작년 말 39%로 올라선 데 이어 올 들어 증가폭이 커졌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수치로 기업이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낸다. 이 비율이 1배 미만이면 영업으로 번 돈으로 이자도 지불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조재훈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 환경이 나빠지면서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들이 늘었다"며 "2분기 이후 실적이 회복되면 기업들의 금융비용 지급능력도 나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박해영/강지연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