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보름새 240원 떨어져

작년 하반기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 붕괴 이후 잇단 '위기설'에 시달리던 국내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았다.

26일 원.달러 환율은 4거래일 연속 급락하면서 연초 수준으로 떨어졌고 코스피 지수는 5거래일째 상승하면서 연중 최고치 경신 행진을 지속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금융연구원, 삼성.현대.LG경제연구원 등 국내 5개 연구기관들은 올해 국내 금융시장에서 '위기설'이 다시 제기될 수 있으나 현실화할 가능성은 1%에도 못 미친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또 '설'로 인한 국내 금융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단기외채의 비중을 낮추고 실물 경기 회복을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 환율.주가 급속 안정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30.50원으로 거래를 마치면서 지난 1월 7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5일 1,568.00원 이후 15거래일간 하락폭은 237.50원에 달하고 있다.

원.엔 환율은 100엔당 1,360.85원으로 마감하면서 작년 11월5일 이후 4개월 반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3월 위기설 등의 여파로 급등세를 보이면서 지난 2일 11년 만에 최고치인 1,570원대로 치솟았지만 당국의 지속적인 개입으로 1,600원 진입 시도가 무산된 이후 국내외 증시가 호전되고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자 급락세로 돌아섰다.

이달 초 12년 만에 최저치인 6,500선으로 떨어졌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최근 미국 경기의 바닥 탈출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7,700선으로 급등한 데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미 국채 매입 여파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자 원.달러 환율도 급속히 하향 안정되고 있다.

국내적으로 무역수지가 대폭 개선되고 있어 환율이 장기적으로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9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무역수지는 이달 40억 달러 이상으로 불어나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SK증권 염상훈 이코노미스트는 "경상수지 300억 달러 흑자 전망이 나오고 있고 외국인의 자금 이탈 가능성도 약화되고 있어 외국에서 국내 시장을 흔들 재료를 더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환율이 1,250~1,300원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면 주식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JP모건체이스은행은 환율이 연말 1,200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외국인의 매수세에 힘입어 전날보다 14.78포인트(1.20%) 오른 1,243.80으로 장을 마치면서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문가들은 환율의 하향 안정과 미국과 유럽 금융시장의 불안감 진정 등으로 국내 증시가 1,300선 진입을 넘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경수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 급등에 따른 부담감으로 조정 압력을 받을 수 있는 시점이지만 조정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며 "추가 상승 여력이 남아 있기 때문에 코스피 지수가 1,300까지 상승할 가능성은 열어두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설'만 있고 '위기'는 없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금융시장이 작년 9월에 이어 올해 3월 '위기설'로 몸살을 앓았으나 위기는 현실화하지 않은 채 사라졌다.

3월 위기설은 외국인투자자금 대량 이탈 등으로 외환위기가 재발할 것이라는 게 핵심이다.

이러한 우려로 코스피지수는 이달 초 장중 1,000선 아래로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은 1,600원선 근처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코스피지수는 최근 다시 1,200선까지 회복했고 원.달러 환율도 1,360원선까지 내려가 위기설도 시들해졌다.

국내 금융시장은 작년 9월에도 외국인의 채권시장 이탈로 국내 경제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설로 출렁거렸다.

그러나 외국인이 오히려 채권을 사들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위기설은 실체 없이 사라졌다.

국내 5대 연구기관들은 하지만 올해 국내 금융시장에서 '위기설'은 다시 제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올해 6월에 5조 원에 가까운 외국인투자자 보유 채권의 만기가 몰려 있어 외국인 자금 이탈 등에 대한 염려는 다시 고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기관들은 그러나 위기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전망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작년 9월과 올해 3월에도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가 돌아왔으나 위기는 나타나지 않았다"며 "더구나 최근에는 외국인투자자들이 채권과 주식 등에서 매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실장은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로 금융시장이 또 출렁거릴 수 있으나 금융위기나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며 "'위기'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 거시.금융경제 연구부장도 "위기설은 과거에도 빈번하게 제기돼 왔으나 별 문제가 없었다"며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되고 있는 만큼 외환시장과 외채에 대한 우려는 현실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LG경제연구원은 실물경기 침체가 오랜 기간 지속될 경우 위기 재발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떠도는 '설' 왜 한국만
전문가들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유독 한국이 잦은 '위기설'로 충격을 받는 것은 단기외채 비중이 높은 데다 외국자본 및 수출 등의 부문에서 대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단기외채와 유동외채(1년 내 만기도래하는 장.단기 외채)는 각각 1천510억 달러, 1천940억 달러로 대외채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40%, 51%를 나타냈다.

외환보유액 대비 유동외채 비율은 2007년 말 77.8%에서 작년 말 96.4%로 높아졌다.

코스피시장 시가총액 기준으로 외국인투자자의 비중은 2월 말 28.5%에 달한다.

수출의존도도 2007년 기준으로 38.3%로 말레이시아(94.4%)와 대만(61.1%) 등에 이어 높은 수준이다.

또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은 데다 경제규모에 비해 외환시장 구조가 취약하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혔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본부장은 "우리나라가 자주 위기설에 노출되는 것은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라며 "소규모 완전 개방 경제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대외경제 여건이 변할 때마다 영향을 받게 되고 외환위기 경험으로 부정적인 인식이 부각되곤 한다"고 말했다.

◇ 단기외채 줄이고, 국가 IR 활성화해야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시장에서 위기설이 재차 부각될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역수지 흑자를 견실하게 유지해 외화 공급 기반을 확대하고 대외신인도 회복을 위해 해외 투자설명회(IR)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앙대학교 신인석 교수는 "위기설에 대처하려면 해외에 국내 현황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은행 건전성 악화 가능성에 대비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실장은 "정부는 실물경제를 회복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선제적인 IR를 통해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외화유동성 문제가 단기에 급격하게 개선되기는 어렵지만 투자심리 완화를 위해 단기외채를 줄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DI의 조 부장은 "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단기 외채를 줄여야 한다"며 "특히 은행들은 보유 중인 외화자산을 적극적으로 회수하는 등 외화수급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최윤정 최현석 기자 indigo@yna.co.krmerciel@yna.co.kr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