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체결했던 자사주 신탁계약을 잇따라 해지하고 있다.

아예 자사주를 처분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주가 관리보다 유동성 확충이 더 급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해지한 기업은 한국가스공사 LS 등 21개사로 규모는 2395억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2개사,100억원보다 각각 10배와 24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들 기업은 해지된 신탁계좌 내에 있는 자사주는 실물로 인출하고 남은 금액은 현금으로 돌려받았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 12일 1000억원 규모의 신탁계약을 해지했으며 LS 강원랜드 코오롱 성진지오텍 비유와상징 등도 100억원 이상의 신탁계약을 잇달아 취소했다.

김명환 대우증권 신탁부장은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기업들이 주가 관리보다는 생존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실물로 받아간 자사주는 앞으로 매각해 현금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현금 확보를 위해 자사주 처분을 결정한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올 들어 지난 16일까지 자사주 처분 결정을 공시한 기업은 21개사에 금액은 41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한신기계공업(13억원) 송원산업(28억원) 등은 자본 확충을 통한 재무건전성 개선을 위해 자사주를 처분하기로 했다고 처분 목적을 밝혔다. SK텔레콤은 해외교환사채(EB) 발행을 위해 자사주를 매각키로 했다.

반면 주가 관리를 위한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 체결과 자사주 매입은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3월16일까지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이 13개사 1385억원이었으나 올해는 같은 기간 8개사 322억원에 그치고 있다. 자사주 매입 결의도 지난해 24개 기업 9870억원에서 올해는 3개사 53억원으로 급감했다.

기업들이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해지하거나 자사주 매각에 나서고 있는 것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응,우선 현금을 확보하려는 의지로 분석된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지난해 4분기 시가총액 상위 5개사만 해도 현금성 자산이 전 분기보다 26%나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중소형 상장사들의 자금 사정은 더 나빠졌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기업들의 유동성 확보 움직임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