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경기 침체에 무릎을 꿇으며 20여일 만에 1000선 아래로 밀려났다. 지난달 코스피지수가 900대로 추락했던 때와 비교해보면 증시 여건이 훨씬 녹록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수급상으로도 연기금의 순매수 강도가 크게 약화된 데다 외국인의 헤지펀드 청산 물량이 남아 있어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20일 코스피지수는 6.7% 급락한 948.69에 마감,장 초반부터 1000선이 맥없이 무너지며 지난달 27일 이후 최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연기금이 414억원어치를 사들이며 지수 방어에 나섰지만 외국인이 900억원 이상 팔아치우며 낙폭을 키웠다.



이로써 지난달 저점 아래로 밀려난 종목도 속출했다. 유가증권시장 706개 종목(우선주.투자회사 제외) 가운데 31.7%에 해당하는 224개가 코스피지수가 장중 892선까지 밀린 지난달 27일에 비해 주가가 더 내렸다. 특히 은행 건설 증권 전기전자 운수장비업종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또 하이닉스 현대차 기아차 등은 신저가로 주저앉았다.

다시 지수 900선대로 내려앉은 증시에 대해 걱정스러운 시각도 많다. 지난달에 투자심리를 위축시킨 주범은 금융위기였지만 이번에는 금융위기에 실물경제의 침체까지 가세하면서 증시가 주저앉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올 3분기 기업 실적에서 경기 침체가 확인됐고 실적도 급격히 악화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에 향후 주가를 점치기가 더욱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정보파트장은 "이번엔 금융위기가 여전한 데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심하게 꺾이는 모습"이라며 "국제통화기금(IMF)이 연례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낸 지 한 달 만에 전망을 수정해 내년에 주요 선진국이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위기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여기에 국내 기업들의 부실문제까지 증시 악재에 가세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으로 건설사 유동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에 따라 은행의 자산 건전성에도 위험 신호가 켜졌다. 이어 중소 조선업체까지 구조조정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증시를 옥죄고 있다.

지수 900대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동력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다. 지난달엔 한.미 통화 스와프가 전격 발표되면서 증시가 패닉 국면에서 탈출했지만 이번엔 어디서 반등의 계기를 찾을 수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조윤남 대신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주가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으로 떨어지면 투자자들이 이를 '싸다'고 느껴 주식을 사줘야 하는데 그런 인식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급 여건도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달 지수 1000선 아래서는 수천억원씩 사들이던 연기금이 최근엔 매수 규모를 크게 줄였다. 코스피지수가 900대로 주저앉았던 10월24일부터 4거래일간 연기금은 1조1823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하루평균 2955억원꼴이다. 하지만 이달 들어선 1000선이 일시적으로 깨진 지난 19일 13억원 순매수에 그쳤으며 이날도 400억원에 불과했다.

반면 외국인 순매도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4조9000억원어치를 내다판 외국인은 이달 들어서도 2조1000억원 이상을 순매도했다. 이런 추세라면 이달 순매도 규모는 3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지난달에 이어 헤지펀드 환매 및 청산 매물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에는 헤지펀드 관련 매물이 집중되면서 국적별로는 미국과 함께 헤지펀드가 본거지를 두고 있는 룩셈부르크 및 케이맨아일랜드 국적의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4조원 넘는 순매도를 기록했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파트장은 "런던 현지 법인의 보고에 따르면 거래 고객인 헤지펀드들의 파산이 본격화되고 있다"며 "이달에도 헤지펀드 청산 물량이 상당부분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경영/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