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금융당국이 공매도와의 전쟁에 나섰다. 증시 패닉의 주범으로 꼽힌 공매도 금지를 통해 추락하는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다.

먼저 칼을 빼든 것은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8일(현지시간)부터 실물주식이 없는 상태에서 주식을 미리 파는 공매도인 '네이키드(Naked) 쇼트셀링'을 전 종목에 걸쳐 금지한 데 이어 19일부터 799개 금융주 전체에 대해 주식을 빌려 매도하는 공매도인 '커버드(Covered) 쇼트셀링'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 전면 금지는 10월2일까지 적용되는 한시적인 조치지만 10일 더 연장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았다.

크리스토퍼 콕스 SEC 위원장은 "투자자와 자본시장을 위협하는 투기세력과 전쟁을 위해 모든 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며 공매도 금지 약발이 받지 않을 경우 금지 대상과 기간을 확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불똥이 튄 영국 금융당국도 공매도 금지 카드를 꺼냈다. 영국 금융청(FSA)은 모든 금융주의 공매도를 18일 자정부터 내년 1월16일까지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영국의 공매도 금지대상은 커버드 쇼트셀링까지 포함된 것이다.

이어 아일랜드 금융당국도 공매도 금지 조치를 밝혔다. 공매도로 주가가 급락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공매 주식의 매도호가를 시세보다 높게 하는 '업틱룰(Up-tick Rule)' 규제를 가해온 호주도 22일부터 네이키드 공매도를 금지할 계획이다.

호주처럼 업틱룰 규제를 가하고 있는 한국도 네이키드 공매도 금지에 이어 커버드 공매도에 대해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공매도 세력과의 전쟁에 들어간 것은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이를 위해 악성루머를 퍼뜨려 이익을 취하는 범죄행위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면서 금융패닉이 발생했다고 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검찰이 공매도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 검찰총장은 "공매도 세력은 허리케인이 지난 뒤의 약탈자"라며 "최근 며칠간 공매도 세력들이 퍼뜨리고 있는 루머에 대한 민원을 접수하고 공매도 불법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수사 대상에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최근 주가가 급락한 금융주들이 대거 포함됐다. 공매도가 시장 유동성을 확대하고 균형가격 형성기능을 제고하는 순기능이 있다는 목소리는 금융공황을 진정시켜야 하는 비상 시국 속에 묻히는 분위기다.

한편 중국이 18일 주식을 살 때 부과하던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고 러시아가 19일 사흘 만에 증시를 열면서 200억달러를 투입하는 등 각국의 증시부양책이 잇따르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정부 관계부처에 금융시장 안정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도 "증시투자자를 위해 세금 감면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