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골드만삭스가 탄생할 수 있을까. 내년 상반기에 마련될 자본시장통합법은 증권 선물 자산운용 신탁 등 자본시장 관련 업무장벽을 허물어 초대형 투자은행(IB)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거대 투자은행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의 인적·물적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외국계 IB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업계의 강력한 의지가 함께 어우러져야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척박한 IB 환경 지난 2004년 말을 기준으로 국내 증권사들의 최대 수익원은 주식거래를 중개해주고 받는 위탁매매수수료다. 1년에 벌어들이는 수입의 절반 이상이 여기에서 나온다. 반면 기업공개(IPO) 주선,증권발행을 통한 기업자금조달,인수합병(M&A)중개 등 투자은행업무로 벌어들인 수입은 전체의 4%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수입은 중소업체의 IPO 등을 통해 벌어들인 것이 대부분이다. 최근 LG카드의 매각주간사 우선협상대상자로 JP모건이 선정된 데서 드러나듯이 규모가 크고 이익이 많이 나는 대형 M&A 관련 업무는 외국계 증권사가 싹쓸이하다시피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올 상반기 국내 M&A 주간사 실적을 집계한 결과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상위권을 독식했다. UBS증권이 65억8528만달러 규모의 거래를 중개해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 모건스탠리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 등이 2~4위를 차지했다. 그나마 국내 최대 증권사인 삼성증권이 USB의 6.5% 수준인 4억2847만달러로 9위에 올랐을 뿐이다. 외국계 증권사 IB담당 임원은 "IB는 네트워크 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객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며 "국내 대형 증권사들조차 해외 네트워크가 전무한 상황에서 정부가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육성하겠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나라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투자은행을 통한 자본시장의 육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와 같은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으로는 혁신산업이나 구조조정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증권연구원 김형태 부원장은 "리스크를 떠안으면서 모험자본에 대해 투자를 할 수 있는 곳은 투자은행밖에 없다"며 "혁신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 구축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화와 대형화가 필수 지난해 뉴욕증시에 상장된 미국의 증권사인 코헨 앤드 스티어스(Cohen & Steers).이 회사는 지난해 말 현재 자기자본 규모가 1억4500만달러로 메릴린치의 300분의 1 수준이고 종업원 수도 고작 78명에 불과한 소형 증권사다. 그러나 월가에서는 부동산 관련 펀드의 최강자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가 관리하는 부동산펀드 규모는 183억달러에 달한다. 미국내 시장점유율도 28%로 1위다. 그린힐(Greenhill & Co.)은 M&A와 기업구조조정 등 재무자문 서비스에 특화한 소형 증권사다. 이 회사의 수익성을 보면 지난 2003년 말 기준으로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40.7%,종업원 1인당 순이익은 42만4000달러에 달한다. 대형 종합 증권사인 제퍼리스그룹이나 베어스턴스도 처음에는 주식중개 전문회사에서 출발해 IB로 전환한 경우다. 미래에셋증권 강창희 투자교육연구소장은 "자본력이 미약한 한국 증권사들이 처음부터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을 지향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처럼 특정분야에 특화해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업체들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IB업무 자체가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만큼 어느 정도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특히 우리의 경우 미국에 비해 시장규모가 훨씬 작기 때문에 틈새시장 전략보다는 모든 IB업무를 취급하면서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 시장 장악에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대우증권 IB본부 채병권 부장은 "자본이 부족한 IB가 할 수 있는 일은 수익이 낮은 중개업무뿐"이라며 "직접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는 자본력이 있어야 수익성 높은 사업을 벌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증권연구원 신보성 연구위원은 "정부가 국내 기업을 매각할 경우에는 반드시 대표 주간사를 국내 IB로 하는 방안을 한시적이라도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증권사들이 이런 방식을 통해서라도 경험을 쌓아야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으며,중국의 경우 실제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