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증시전망,내년에 실시될 한국 총선과 미국 대통령 선거….이 모든 것이 이제는 경기문제에 달렸다. 특히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미국경제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제는 현재 미국경기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종전에는 생산과 매출이 증가하면 일정한 시차를 두고 고용이 증가했다. 생산과 소비 그리고 고용지표가 일관성을 띠었기 때문에 경기판단이 그만큼 용이했다는 얘기다. 반면에 최근 들어 산업생산과 매출이 증가하고 있으나 고용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의 일자리는 산업생산이 회복됐던 2001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약 70만명이 줄어들었다. 이른바 '고용없는 회복(jobless recovery)'이다. 이 상황에서는 생산과 소비를 중시하면 경기가 회복기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고 고용을 감안하면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다. 무엇보다 생산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생산성은 1970년대 이후 95년까지 연 0.7% 증가에 그쳤으나 95년 이후 지금까지 생산성 증가율은 2.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2001년 이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정책목표가 물가안정보다는 경기부양 쪽으로 선회된 것도 큰 요인 중 하나다. 결국 급격한 생산성 증가와 FRB의 경기부양 우선책으로 2001년 말 이후 산업생산과 매출이 비교적 호조를 보이는 데도 고용이 뒤따르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미국경기를 판단하는 전미경제협회(NBER)가 지금까지 이번 경기회복 여부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다. 또 우리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기를 보는 시각이 엇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번 경기처럼 고용이 따르지 않는 회복에서 유가와 같은 공급측 인플레 요인으로 물가마저 오름에 따라 국민들의 체감경기가 급격히 악화되고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우리만 하더라도 경제고통지수(misery index)가 지난해 12월 6.8이었던 것이 올 3월에는 8.0으로 높아졌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는 정책당국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커지게 마련이다. 종전처럼 정책당국이 생산과 매출증가를 중시하면 경기를 낙관하게 되고 정책도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반면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은 더욱 커져 경기를 낙관하는 정책당국에 대해 실망하게 되고 적극적인 정책대응을 요구하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는 종전의 잣대로 경기를 판단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달초 국제통화기금(IMF)이 새로운 경기판단지표로 기업취약지수(CVI:Corporative Vulnerability Index·레버리지 비율과 기업가치 변동성,무위험 이자율, 배당률 등의 재무지표를 이용해 산출)를 제시해 주목을 끌고 있다. CVI는 종전의 경기판단방법이 경제상황과 정책기조,경제전망 등 펀더멘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감안해 만든 지표다. 대표적으로 종전에는 레버리지 비율이 높으면 경기침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봤으나 최근처럼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차입조건이 개선됨에 따라 이 비율이 높다 하더라도 기업파산이 늘어나지 않는 점을 설명할 수 있다. IMF가 CVI와 미국경기의 실증적 관계를 연구한 자료를 보면 CVI는 경기침체 가능성을 4∼6분기 정도 앞서서 예측할 수 있고 이 지수가 높을수록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침체기간도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는 어떤가. CVI로 예측한 경기침체 가능성은 99년 말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이번 경기의 정점인 2001년 1·4분기에 53%로 최고수준에 달했다. 그 후 2001년 말부터 산업생산과 매출증가로 거시경제 취약성이 줄어듦에 따라 최근에는 15% 수준까지 하락했다. 과거 경험을 볼 때 CVI로 예측한 경기침체 가능성이 50% 이하로 떨어졌을 경우 경기침체가 끝난 것으로 평가됐다. 최근 들어 뉴욕 월가에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되는 대목이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