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주)의 주식을 최근 집중 매입한 크레스트 시큐리티스의 의도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크레스트측은 SK(주) 경영진과의 면담에서 "적대적 M&A나 그린메일 의도는 없으며 장기투자를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분구조와 통신사업법상의 외국인규정을 이용, SK텔레콤에 대한 그룹의 지배력을 무력화시킬 수있으며 이를 내세워 SK(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SK(주)를 포함한 SK그룹은 SK텔레콤 주식으로 1조원대 시세차익을 챙기고 떠난 '타이거펀드'보다도 훨씬 더 심하게 크레스트에 농락당할 위기에 몰리게 됐다. 왜 14.9%인가 =크레스트는 지난 3일 SK(주) 지분 8.63%를 매집했다고 공시한데 이어 10일 3.75%를 더 샀다고 금감원에 신고했다. 증권가에서는 크레스트가 당초 14.9%까지 취득한 금액을 기재했다가 이를 고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SK(주) 지분 14.9%는 SK텔레콤에 대한 이 회사의 지배력을 결정짓는 가장 큰 변수다. SK텔레콤은 전기통신사업법상 외국인 지분이 49%를 초과할 수 없으며 초과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외국인은 순수 외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지분이 15%를 넘는 국내기업도 해당된다. SK그룹은 SK(주) 20.85%, SK글로벌 3.06% 등 24.07%(자사주 10.23% 제외)의 지분을 통해 SK텔레콤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1대 주주인 SK(주)가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바뀌는 순간 SK텔레콤에 대한 의결권은 20.85%에서 8.04%로 현저히 낮아지게 된다. SK텔레콤에 대한 외국인 지분이 지난 11일 현재 40.96%에 달하기 때문에 49%를 초과하는 SK(주) 지분 12.81%는 의결권을 잃는다. 이 경우 SK그룹의 SK텔레콤 의결권은 24.07%에서 11.26%로 낮아져 경영권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크레스트 SK(주) 간섭 커질듯 =크레스트는 SK(주) 지분 14.9%를 확보함으로써 재계 3위인 SK그룹을 사실상 지배하게 됐다. 크레스트가 SK(주) 지분을 0.1% 더 늘리는 순간 SK텔레콤은 그룹의 손을 떠나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될 수 있다. SK(주) 지분 0.1%는 지난 주말 종가 기준으로 13억9천6백만원에 불과하다. 1천7백억원을 투자한 크레스트는 14억원을 지렛대로 얼마든지 SK(주)를 위협할 수 있다. 크레스트의 이러한 의도는 SK(주) 경영진과의 면담과정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SK(주) 관계자는 "크레스트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촉구하면서 보유중인 SK텔레콤 주식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캐물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크레스트는 SK텔레콤이 SK(주)의 자회사인 만큼 투명경영과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직접 SK텔레콤의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사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SK(주)의 다른 관계자는 "SK텔레콤 주식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관건이 되고 있다"고 말해 SK텔레콤 주식 보유여부를 놓고 크레스트측과 갈등을 빚고 있음을 시사했다. 크레스트는 또한 경영참여 요구도 분명히 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유정준 SK(주) 전무와의 면담에서 크레스트의 모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 제임스 피터 최고운용책임자는 '경영감시인(watch dog) 역할을 맡아 저평가된 SK(주) 기업가치를 높이도록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SK(주)는 크레스트의 간섭에서 벗어나 텔레콤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무리한 요구를 해와도 수용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자칫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크레스트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사줘야 하는 상황에 몰릴지도 모른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